5. 셔틀버스 20220104
알람 시간을 이십 분 늦췄습니다.
셔틀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지하철역에 내려 개찰구를 지나 시계를 보니 셔틀버스 출발 이 분 전입니다. 걸음을 빨리했습니다. 삼사십 초면 정류장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벗어났습니다. 지상입니다. 차가 보이지 않습니다. 벌써 출발했을 리는 없습니다. 머뭇거리다 시계를 잘못 본 것이 아닐까 했는데 확인해 보니 일 분 전입니다.
‘차가 지체되고 있을 거야.’
기다리는 사이 다른 역에서 출발한 셔틀버스가 코너를 돌고 있습니다. 기사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기사는 손을 가로저으며 그대로 지나쳐 복지관으로 향했습니다. 오 분이 지나도 버스가 나타나지 않아 걸어서 수영장에 도착했습니다. 차로 이삼 분이면 갈 거리를 걸어가니 이십 분이나 초과하였습니다.
복지관으로 가는 첫 차의 출발시간은 여덟 시 사십 분입니다. 어제는 이 시간을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시간을 늦춰 잡았습니다. 수영 시간은 두 시간입니다. 내 시간은 아홉 시부터 열한 시까지입니다. 오랜만에 하는 수영이라서 그런지 끝까지 하기에는 힘에 부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을 늦춰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용객이 빨리 가기를 원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덜 붐비는 시간을 압니다. 열 시부터입니다. 대부분 사람이 아홉 시경에 몰려들어 열 시면 떠나고 열 시 반경이면 수영장의 레인 중 한두 곳은 빕니다. 이 시간을 이용하면 느긋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습니다. 내 리듬에 맞추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나는 전에 이 틈새의 시간을 잘 이용했습니다.
수영장에 도착했습니다. 창구 직원에게서 키를 건네받기 전에 한마디 했습니다.
“셔틀버스가 안 왔나 봐요. 걸어왔어요.
그러자 동암역에서 출발해 가던 중 눈을 마주친 기사가 다가왔습니다. 어제부터는 중간에 정차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대의 차가 두 대로 환원되면서 내가 기다리는 곳은 다른 차가 순환을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노선표와 노선 시간을 알고 있고 눈까지 마주쳤습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습니다. 간석역 셔틀버스의 이야기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때 간석역과 복지관을 왕복하는 셔틀버스 기사가 다가왔다.
“갔다 왔는데요.”
“아니 출발 전에 와서 오 분 이상이나 기다렸는데요. 이상도 하다.”
기사는 나를 태우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나를 기억한 것입니다. 어제는 새해 처음 운행을 시작한 날입니다.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이고 내가 지금과 같은 모자를 썼으니 말입니다.
“알아요. 어제 여덟 시 사십 분 차를 탔었으니까.”
기사는 오늘 아홉 시에 역에서 출발했다고 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동암에서 출발하는 차는 먼발치에서도 발견했는데 코앞의 차는 보지 못했을까. 그것도 정류장에서 말입니다. 내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자, 그는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자리를 떴습니다. 사실 역에서 복지관까지는 걸을만한 거리입니다.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이 겨우내 건강을 핑계로 오후가 되면 만 보 이상을 걷도록 노력했습니다. 단지 시간을 아껴볼 요량이었는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참 많이 걸었습니다. 차비를 아끼고 싶어서입니다.
유년기 시골에서 살던 때가 생각납니다. 대중교통편이 없는 관계로 시내에 갈 일이 있으면 무조건 걸어야 했습니다. 차가 닿지 않는 곳입니다. 집안에 일이 있거나 구경해야 할 경우 왕복 육십 리 길을 걸었습니다. 심부름 길도 멀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차비를 아낀다는 생각에 걸었습니다. 모인 돈으로 책을 사거나 갖고 싶은 것을 마련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산책은 “여러 권으로 된 빨강머리 앤”입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습관이 이어졌고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가까워 보이는 거리는 걸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시간 정도의 거리는 으레 걷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가끔 오해를 살 때가 있습니다. 방향이 맞는 동료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 친척들이 차를 함께 이용할 것을 권유하지만 종종 뿌리치고 걷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때의 일입니다. 우리 집 가까이 사는 친구와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중이었습니다. 염천교에 이르렀을 때 한 처녀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이어 이마가 내 얼굴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하고는 소리를 지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오래간만이야. 그동안 어디 있었어.”
나는 놀란 나머지 손을 뿌리치고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주춤하는 사이에 그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머리가 헝클어진 채 산발입니다. 옷이 남루했습니다. 내가 손사래를 치자 잠시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여자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무엇인가 착각했나 봅니다. 정신 이상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지 않은 말로 표현하면 미친 여자. 실성한 여자.’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걷는 동안 친구가 귓속말했습니다.
“누나, 아니면 애인 아니니.”
농담인 줄 알면서도 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흘겼습니다. 하지만 며칠 동안 그녀의 모습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셔틀버스 기사가 순환 횟수에 따라 시간을 잘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착각하지 않았으니 무슨 말 못 할 사연이 있었으리라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노인들이고 보면 짧은 거리라고는 하지만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강의 시간을 맞추기 위한 경우도 있습니다. 올해는 모두가 자기의 본분을 지키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