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머리 모양 20220107
셔틀버스를 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차에 오르며 인사를 했습니다. 승객은 나 하나뿐입니다. 누구한테 인사를 했을까. 뻔하지 않습니까. 기사를 향해서입니다. 대답이 없습니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앞만 향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지정된 시간에 출발했습니다. 거리는 일 미터 남짓이지만 침묵입니다. 대각선으로 보이는 그의 두상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깔끔해 보이기는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조폭의 머리모양입니다. 내릴 때는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일상의 인사를 잊었습니다.
지난해의 기사는 상냥했습니다. 차에 오르는 승객을 향해 일일이 인사를 했습니다. 내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머리모양도 인사를 나누는 표정만큼이나 만큼이나 가지런하고 부드러웠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금의 기사를 흉보려는 생각은 아닙니다. 단지 첫인상이 마음에 와닿지 않을 뿐입니다. 첫 대면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머리 모양은 표정만큼이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줍니다. 그 사람의 외양이 추해 보이기도 하고 깔끔하고 단정해 보이기도 합니다. 날카로워 보이기도 하고 왠지 게을러 보일 때도 있습니다.
나는 내가 낯설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이발하고 난 직후입니다. 거울을 보면서 정말 내가 맞나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머리칼이 잘려 나가고 보면 전체적으로 두상의 변화가 있습니다. 변화된 모습에 마음속으로 멋지다 하기도 하고, 이게 아닌데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단골 이발소라는 말이 생겨났는지 모릅니다. 나의 취향도 있지만 이발사의 마음에 따라 머리의 모양은 다소간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옷이 유행을 타듯 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는 잠에서 깨어나 거울을 보았을 때입니다. 헝클어진 머리칼, 잠을 많이 자 부스스해진 얼굴입니다.
“까치집을 지었네. 야, 빨리 머리 감아.”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고모의 목소리가 아침 밥상보다 먼저 다가왔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입니다. 동생의 머리칼은 고모의 손을 탔습니다. 산골의 작은 동네이고 보니 이발소나 미장원은 없습니다. 아이들의 머리 깎기는 으레 동네 어른들의 몫입니다. 손재주가 있다는 사람의 손을 빌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동생은 머리를 깎은 날이면 눈에 눈물이 넘쳤습니다. 목을 덮은 머리칼이 귀밑까지 잘렸습니다. 때로는 귀의 중간쯤까지 짧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울을 본 동생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곧 보자기를 머리에 뒤집어썼습니다. 가위질이 서툴러서인지 눈썰미가 부족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좌우 균형이 맞지 않으니 일어난 일입니다. 왼쪽이 조금 긴 것 같다는 생각에 머리칼을 잘랐습니다. 아니 오른쪽이 더 내려왔네. 오른쪽을 다듬었습니다. 자꾸만 손이 가다 보니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동생의 마음에 들지 않게 머리가 깡충해졌습니다.
학교에 갈 때도 보자기를 벗지 않았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머릿수건을 벗으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말을 듣지 않았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변해버린 자기 얼굴 모습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언니 같은 선생님은 혼을 내는 대신 일기장에 두어줄 글을 남겼습니다.
“깔끔하고 단정하구먼.”
“예쁘다.”
친구들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단발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여겨집니다. 단지 머리칼이 생각 외로 짧았을 뿐입니다. 그때의 초등학교 아이들 머리는 귀밑과 일직선이 되도록 짧았습니다. 앞 머리칼은 눈썹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중고등학생 머리도 그랬습니다.
내 머리는 어땠을까.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까까머리입니다. 어쩌다 읍내에 갔다 오는 날이면 상고머리로 얼굴 모양이 변할 때도 있습니다. 며칠간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머리칼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단정하면 됐지 하는 마음입니다. 한 마디로 짧은 머리를 선호합니다. 이런 이유로 젊었을 때 종종 검문당했습니다. 이중 대부분은 직장 때문입니다. 주위에 군인부대가 몇 군데 있다 보니 출퇴근 시에는 늘 검문소를 지나야 했습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군사경찰이 시외버스에 올랐습니다.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뇌이지만 생각대로 되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기입니다. 군사경찰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려 검문소 안으로 안내됩니다. 주민등록증을 내밀었습니다. 인적 사항이 빨리 확인되면 다시 차에 오르지만, 늦을 경우에는 다음 차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불편함이 많았지만, 머리칼을 길게 기르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유행에 민감하지 못해서일까 봐 그 시절에는 장발과 미니스커트 차림이 유행했습니다. 가위와 자를 손에 쥔 경찰이 미니스커트와 장발을 단속했지만 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첫인상이 대수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머릿속에 저장합니다. 서로 친해진다 싶으면 첫인상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만큼 첫 외모나 말씨는 상가의 입간판처럼, 상품의 포장지처럼 자취를 남깁니다. 우리는 내면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외모나 말씨에 대해 늘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오늘은 수영한 후 모처럼 거울 앞에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써 환한 미소를 지어봤습니다. 매일 해봐도 좋을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