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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17. 나도 놀랐다. 20220208

by 지금은

“김밥 사 먹게 천 원만 주세요.”


“네?”


“천 원만”


상대가 슬며시 얼굴을 내 앞에 들이대며 하는 말에 당황했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입니다. 나는 생각할 여유도 없이 두 손을 들어 손사래를 쳤습니다.


“없어요.”


나의 큰 소리와 함께 강한 부정의 표시입니다. 눈을 마주치던 그녀는 순간 당황해하는 눈치입니다. 잠시 표정이 굳어있던 그녀는 전동차가 멈추자 터지도록 빵빵한 배낭을 끌고 승강장으로 사라졌습니다.


잠시 후 전동차가 출발하자 내 행동에 스스로 놀랐습니다. 왜 그토록 강한 거절을 했는지 모릅니다. 내 수중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주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실정이니 현금을 지니고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현금이 꼭 필요할 때는 집에서 고만큼만 가지고 나갑니다. 지갑을 지니는 일이 귀찮습니다.


그 여자가 휴대용 카트에 뚱뚱한 배낭을 싣고 내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침내 옆자리가 비어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손으로 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내 곁으로 다가서서는 엉거주춤 서 있습니다. 앉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정류장을 지나치는 가운데 나의 예측이 어긋남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녀는 앉을 생각이 아니라 나에게 동정을 구할 참이었습니다.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가운데 잠시 망설임이 아니었을까.


‘내가 지금 가진 것이 없어서…….’


조용히 말을 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무안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발적으로 남에게 동정을 베푼 일은 별로 없습니다. 어쩌다 상대가 먼저 다가와 요구할 때면 몇 차례 원하는 금액을 준 일은 있습니다. 그것도 상대의 행색이나 외모로 나타나는 건강의 상태를 힐끗 본 다음입니다. 외모가 깔끔하거나 건강해 보일 때는 거절했습니다.


몇 년 전 따스한 봄날이었다. 오늘처럼 전동차 안입니다. 모 협회의 문학상을 받고 돌아오는 길, 내 손에는 꽃다발과 상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만 원만 주시면 안 될까요.”


다리를 저는 청년이 내 앞으로 다가와 몸을 구부리고 말했습니다. 시골집에 가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차비가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내가 머뭇거리자 아내가 귓속말했습니다.


“기분 좋은 날인데 선심 써요.”


마침 지갑에 현금이 있습니다.


역을 벗어나자, 바람이 매섭습니다. 귀가 시립니다.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남루한 여자의 요구에 대해서 왜 그렇게 심한 부정을 나타냈는지 스스로 놀란 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아내는 나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는 그 여자의 편입니다.


“이 추운 날에 얼마나 힘들고 배가 고프면 그랬겠어요. 말을 들어보니 노숙자 같구먼.”

그럴지도 모릅니다. 되짚어 보니 행색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뭐, 가진 돈이 있었어야 말이지.”


그러고 보니 돈이 없기는 그 여자나 나나 마찬가지입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비해서라도 얼마간의 비상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은행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만기가 되었다는 통지입니다. 급히 쓸 일은 없으니, 재 이체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자는 어떻게 할까요.”


“한 통장에 넣어주세요.”


전동차에 올랐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내 주머니에 현금이 없습니다. 그녀가 무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따라 내려 배고픔을 달래주었으면 좋았으련만…….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안다고 했습니다. 나는 어느새 부자가 되었나. 언젠가부터 배고픔을 잊었습니다. 나도 어려서는 늘 배가 고팠는데, 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다 그랬습니다. 지금 내 손에는 습관처럼 아무것도 없습니다. 빈손입니다.


사람은 무슨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갑자기 톨스토이의 동화 한 편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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