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꿈 20220209
나는 아직도 떠나지 못했습니다. 육지로 나가는 열 시와 열두 시의 배편이 있습니다. 오늘도 육지에 발을 딛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시간은 가까워져 오는데 짐은 선착장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새벽부터 세간을 꾸리기에 바빴지만, 이삿짐 차는 중간에 머물러 있습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움직일 줄을 모릅니다.
‘빠뜨린 게 있는 거야?’
내 것이면서도 모르겠습니다.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입니다. 몸도 마음도 심란합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선착장에서 서성였습니다.
나는 이십여 년 전에 섬을 떠나왔습니다. 몸은 탈출했지만, 마음은 아직도 그곳에 머물러 방황합니다.
‘일심동체라 했는데 마음과 몸이 분리될 게 뭐람.’
마음속에 미련이 남아있어서일까. 일 년에도 몇 차례씩 섬 생활에 관련되었던 꿈을 꿉니다. 그렇다고 섬을 떠난 후 그곳을 다시 찾은 일은 없습니다. 원수라도 지은 양 고개를 돌렸습니다. 섬에 대해서 섭섭한 일도 좋지 않은 감정도 없습니다.
섬 생활 사 년은 동화 같은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식생활이 다소 불편하기는 했어도 내 마음을 괴롭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텃세라도 부리는 양 몇몇 사람이 나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으나 곧 봄날에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그들과 부딪칠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자세를 낮춘 탓입니다. 많은 사람과 교류하지 않는 대신 몇 명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내가 섬을 떠나는 날 그들은 섭섭해했습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속으로는 계속 머물기를 원했지만, 정기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섬을 동경하여 직장 근무를 자원을 했어도 나처럼 원하는 사람이 있는 이상 계속 머물 수는 없습니다. 떠나기가 섭섭해서 다음 부임지에 가야 하는 날까지 있다가 그곳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함께 지내던 사람 중에는 나를 배웅하지 못한 것을 못내 섭섭해했다고 합니다. 뱃일을 부지런히 끝내고 왔지만, 집과 부두에서 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답니다. 배 시간과 관계없이 내가 기다려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이 있었나 봅니다.
“다음 주에 다시 올 거야.”
생각과는 달리 빈말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임지에 부임하자마자 직원 모두가 함께 건강검진을 했습니다. 내 건강이 좋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예감을 했지만, 결과는 심각했습니다. 위와 혈관 계통에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식생활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규칙한 식생활, 섬사람들과 어울림에서 나타난 결과입니다. 음주가 한몫을 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과의 사적 만남을 최대한 억제하기로 했습니다. 내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나중에 들려오는 소문입니다. 섬에서 다정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몹시 서운해했답니다. 서운함을 넘어 비난의 화살을 날렸습니다. 나의 뒤를 이어 부임한 사람의 말입니다. 그는 나의 태도에 자신의 처신마저 의심받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어쩌겠는가. 우선 살고 봐야지 않겠습니까. 그들과의 교류는 건강이 회복되고 나서의 일입니다.
나는 섬과 바다를 동경했습니다.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산촌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지내서 그런지 바다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산촌, 농촌, 어촌, 도시를 모두 아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퇴직하고 바닷가에 살기를 원했지만, 소원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곁사람의 반대입니다. 교통이 불편한 곳에 살면 몸이 아플 경우 병원 이용이 불편하다는 이유입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바다를 동경하는 마음이 남아있어서 대신 꿈을 불러들이는지 모릅니다.
바다 그리고 섬.
나의 낭만이 살아있습니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동심입니다. 수평선으로 뜨고 지는 해, 하늘을 수놓는 구름과 새 떼들, 밤이면 해안에 내리는 별들의 속삭임, 갯벌을 달리는 벌거숭이 아이, 왕자와 공주가 살고 있는 모래성을 흐트러뜨리는 얄미운 파도, 밀물을 따라 들어오는 숭어 떼,
나는 달 밝은 밤이면 썰물을 따라 잘박잘박 별들을 터뜨리며 고요의 갯벌을 걷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