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까치밥 20220220
크고 싱싱한 사과 두 쪽이 아파트 옆 나무 밑에 놓여있습니다.
“멀쩡한 사과를 누가 버린 거야.”
나는 전철역으로 가기 위해 아파트 사이를 가로질러 가던 중 잠시 발길을 잠시 멈췄습니다. 검붉은 색을 띤 탐스러운 사과가 발끝에 챌 듯 누워있습니다.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릴 거면 남이나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몇 발짝 걸음을 옮겼을 때 앞에 보이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적색 신호로 바뀌었습니다. 잠깐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사과의 미련이 아직도 남아있었던 때문입니다. 십 미터 남짓한 거리입니다. 사과는 정확히 반쪽으로 쪼개져 젖혀진 상태입니다. 칼로 자른 것 같습니다. 흰 속살이 하늘을 보고 있습니다. 어느새 까치 한 마리가 사과 앞에 이르렀습니다. 꽁지를 내 방향으로 한 채 머리를 흔듭니다. 절구 방아를 찧는 공이처럼 머리가 몇 차례 오르내립니다. 따라서 꽁지도 들썩입니다. 곧 적색 신호등이 눈을 감았습니다.
횡단보도를 역방향으로 건넜습니다. 나는 서울에서의 볼일을 마치고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길입니다. 사과는 처음 보았을 때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편을 가른 듯 똑같은 모습을 띤 반쪽의 사과 두 개가 몇 뼘 사이를 두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멀리서 보던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매끄러워 보이던 겉면은 처음과는 달리 군데군데 상처를 입고 속살은 갈변되었습니다. 갑자기 까치 두 마리가 바닥으로 내려앉았습니다. 내가 망부석처럼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가까이 다가왔던 까치가 내 작은 움직임을 알아차렸는지 곧 나뭇가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까치가 사과의 속살을 파먹은 게야?’
그제야 나는 자리를 옮겨 조형물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까치는 영물이라고 하더니만 내가 보이지 않자, 사과로 다가갔습니다. 아까처럼 까치의 머리가 오르내립니다. 그들은 잠시 그렇게 머물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사과는 조금 전보다 더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못에 의해 땅이 긁힌 것처럼 불규칙하게 살이 파였습니다.
나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
‘누군가 새들을 위해 보시(普施) 한 거야.’
주위에 널려있는 팥배나무를 올려 보았습니다. 그 많은 팥배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낙엽이 지자 별 보다 많아 보이는 빨간 열매들이 파란 하늘을 맘껏 가렸었습니다. 저 열매들만으로도 새들은 겨우내 배가 부르겠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열매들이 모두 사라지고 빈 가지들만 허공을 향하고 있습니다. 쌀쌀한 바람에도 태양을 바라보며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상들은 겨울이 시작되는 늦은 가을이면 까치밥을 왜 남겼는지 이해가 됩니다. 길조라고 여겼던 까치만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다른 짐승들을 함께 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느 늦은 겨울날입니다.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아침 마지막 남은 열매를 쪼아 먹는 다른 새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 초가지붕 위로 솟은 감나무에 마지막 남은 까치밥은 해마다 의기양양했습니다. 하늘이 제 것 인양 제 홀로 일광욕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겨울이 지나갈 것만 같았건만 어느새 눈발이 거세지고 세상이 눈 속에 묻혔습니다. 그동안 감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까치가 한 차례 쪼아 먹고 떠나자, 명새가 다가갔고, 개똥지빠귀도 잠시 머물러 부리로 쪼는 것을 보았습니다. 홍시는 점차 크기가 줄어들고 거죽이 쪼글쪼글해졌습니다. 이마저도 며칠 후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까치밥이 사라진 마을에는 새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식생활도 점차 어려워졌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내 어린 시절에는 배고픔을 겪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삼순구식(三旬九食)이었는지는 몰라도 봄이 돌아오면 불행한 소문이 들렸습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갔습니다. 사기막골에 사는 친구가 말했습니다.
“복동이네 엄마가 죽었어.”
“왜?”
“굶어 죽었어.”
그러고 보니 복동이는 이후로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학년이 되어서 안 일이지만 식구들이 괴나리봇짐을 들고 고향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빈곤한 가정의 주부 중에는 이웃집에 양식을 꾸러 다니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어느 해 가을 추수가 끝나자, 장리쌀을 갚아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지난가을에 도토리를 주웠던 일이 떠오릅니다. 공원에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동물들의 먹이인 열매를 따거나 줍지 마시오.’
어릴 적 놀이가 생각나 몇 알 주워 와 집 창가에 늘어놓았습니다. 나의 하찮은 손장난이 다른 생명체에게는 큰 고통이나 슬픔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