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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21. 짬짜미를 좋아한다. 20220221

by 지금은

나는 외국의 작가가 쓴 책을 읽을 때면 우리나라 작가가 쓴 책에 비해 어려움을 겪습니다. 내가 그 나라 언어와 글에 익숙하지 못하니 우리 글로 번역된 것을 읽게 됩니다. 외국어를 익히는 것만큼은 아니어도 시간이나 집중력을 배가시켜야 합니다. 만만하다고 덤볐다가 독서를 끝내고 나서 흐름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원인을 잘 몰랐습니다. 영어를 지금까지 몇십 년 공부했지만, 늘 초보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외국 작가의 작품이니 그럴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지금도 영어 공부 중입니다. 눈을 뜨면 어김없이 텔레비전 스위치를 켭니다. 아침 식사 전 몇 년째 하는 습관이니 남들은 내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겠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왕초보 영어 회화’를 두고 아직도 씨름 중입니다. 오히려 구문 실력이 줄었다고 인정해야겠습니다. 그동안 암기했던 영어 단어를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문장의 짜임을 구성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등장인물의 소리와 몸짓을 흉내 내지만 도무지 향상될 기미가 없습니다. 나는 어느 순간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한 마디로 몰입의 정도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내 버킷리스트에는 외국 여행이 들어있습니다. 개별 여행을 꿈꾸기에 외국어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해외에 나가 활동하려면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는 못해도 여행에 필요한 소통을 위해 기초 회화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동안 들쑥날쑥하던 영어 공부였는데 작년 초부터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몰입하지 못했어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꾸준히 참여합니다.


나이 탓을 해야만 할까? 뭐 나이가 벼슬이나 된다고 머리를 가로저었습니다. 하지만 문장 익히기는 기계적입니다. 그때뿐입니다. 톱니바퀴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찾아옵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린다고 하더니만 유난히 그 영어 단어가, 그 영어 문장이 자꾸만 기억에서 사라지는지 답답합니다. 모든 외국어가 그럴까. 그래도 얻은 것은 있습니다. 가끔 내 연배의 사람들이 영어 회화가 어렵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영어를 배운 게 60년은 되는데 입 한번 제대로 떼지 못해서야 원.”


“다 그래요, 어려운 영어를 배워서 그래요. 몰입하지 않은 탓도 있고.”


나는 요즈음 유아들의 언어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왕초보도 아니고 왕왕 초보 말입니다. 기초부터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상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 연배의 사람들은 구어보다는 문어 위주로 교육받았습니다. 쉬운 문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귀와 입이 문제입니다. 듣고 말을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요즈음 책을 읽을 때면 사전과 메모지를 옆에 둡니다. 우리 작가들이 쓴 책을 읽을 때도 이것이 필요하지만, 외국 작가의 책을 읽을 때는 내 머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내가 독서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등장인물과 지명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이나 지명에 비해 생소합니다. 이는 익숙하지 못한 그 나라의 문화와 환경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낯선 단어가 나올 때마다 메모지에 기록합니다. 마인드맵을 정리하는 요령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틀이 변형되어 가계도가 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지도가 되기도 합니다. 나는 예전에 비해 점차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인식합니다. 젊었을 때는 밤을 새워 가며 독서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한 시간 이상 책에 매달리기가 힘듭니다. 몇십 페이지를 읽다가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잠시뿐이었는데도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사건의 관계를 연관 짓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때는 내 메모지가 도움을 줍니다.

잠시 쉬었다 읽거나 무슨 일로 하루 이틀 지난 후에 독서해야 할 경우 기록한 메모지를 다시 들여다봅니다.


‘아, 그렇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앞 페이지로 넘어가는 일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습니다. 또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묵독이나 속독이 주였다면 현재는 종종 음독이나 낭독하고 지독을 선호합니다. 내가 소리 내어 읽는 이유는 머릿속의 잡념이 깃드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 때문이기도 합니다. 눈은 분명히 글자를 따라갔는데 마음이 샛길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책의 내용과 관련 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침범했습니다. 이 경우 어쩔 수 없이 앞 페이지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독서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나의 독서방법이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각각 선호하는 독서의 방법이 있습니다. 단지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좋은 독서란 꾸준함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옛말에 ‘남아독서오거서(男兒독서讀書五車書)’라 했습니다. 요즈음 세상에 어디 남아만의 일이겠습니까. 남녀의 차별이 없는 세상입니다. 꾸준한 독서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이 강조되는 시기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은 독서입니다. 책의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 여러 가지 경험을 쌓고 또 즐거움도 얻을 수 있습니다. 독서할 시간이 없다거나 독서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뒤로하고 우선 책을 가까이해볼 일입니다. 나는 짬짜미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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