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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23. 흰 머리카락 20220226

by 지금은

“이리 앉으세요.”


중년의 남자가 내 소매를 잡아끌었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그는 내 눈과 마주치지도 않은 채 전동차의 문 옆으로 비켜섰습니다. 나는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잠시 어안이 벙벙합니다. 앉기도 그렇고 그 자리에 서 있기도 뭣합니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친 그도 당황한 얼굴입니다. 나는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다 옆 칸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내가 벌써 자리를 양보받아야 할 처지가 된 거야.’


나는 어느새 열여섯 살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가끔 비슷한 일이 생겼습니다. 내가 교복 대신 사복을 했을 경우입니다.


한 번은 이발할 때 스님의 머리처럼 깎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새치를 감추고 싶었습니다.


“면도하듯 밀어버리면 머리가 무척 따갑고 아플 터인데.”


“괜찮아요.”


나 스스로 아픔을 잘 참는다는 생각에 ‘이까짓 것쯤이야’ 했습니다. 이발사는 내 머리카락을 다 밀고 머리를 감겨주었습니다. 그의 강조한 말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리가 따갑고 쓰라렸습니다. 후유증은 몇 지속되었습니다. 그보다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학교에 가자, 담임선생님이 지청구했습니다.


“스님이라도 되려는 거야, 멋을 부리려는 거야.”


머리를 푹 숙인 채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꾸했다가는 선생님과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친구 중에는 말대답했다는 이유로 며칠 동안 시달림을 받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잠시 꾸중이 이어졌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면도날로 머리를 미는 일은 없도록 하라는 훈육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내 흰 머리칼은 문제가 되었습니다. 동생은 가끔 내 흰 머리칼을 뽑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랬습니다. 친구들은 심심하다 싶으면 내 머리를 놀림감으로 삼았습니다.


“손자가 몇 살이오.”


“너하고 동갑쯤 됐을 거야.”


가끔 있는 일이니, 나중에는 농담으로 받아넘길 여유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때입니다. 선배 중 한 명이 내 머리칼에 신경이 쓰였던 모양입니다. 술자리에서 입니다.


“염색을 해보는 게 어때.”


내가 왜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토요일 오후가 되자 서둘러 이발관에 가서 머리 염색을 했습니다. 거울을 보니 머리가 한결 단정해 보입니다. 흡족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안 식구들도 나와 같은 마음입니다. 형은 이발을 할 때마다 염색도 함께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형은 나와는 달리 새치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이틀 후 병원에 갔습니다. 안과입니다. 자고 일어나서 거울을 보니 눈의 흰자위가 붉습니다. 피곤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다음날 거울을 보니 눈 전체가 새빨갛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안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여름철 유행성 눈병 같다고 합니다. 일주일 분의 약을 처방받고 매일 적외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염색했습니다. 때마다 같은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머리 염색으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는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내가 ‘옷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염색약에는 ‘옷’의 성분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나는 산에 가면 가끔 옻나무를 만지거나 스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식구들과 옻닭이나 옻순 튀김을 먹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나는 여러 날 동안 고통을 겪었습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가려워 밤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곧 염색하겠다는 마음을 버렸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옷과 연관이 있는 것에는 접근하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 중에는 어쩌다 옻닭을 먹자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사래를 칩니다.


이제 내 머리는 백발로 뒤덮였습니다. 이제가 아니라 삼십여 년은 된 것 같습니다. 머리칼도 빠지고 가늘어져 이미 대머리가 되었습니다. 머리칼이 풍성한 사람을 보면 부럽기는 하지만 어쩌랴,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는 거 아니냐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예전부터 마음에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가발을 권하기도 했지만, 생긴 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밖에서 모자라는 것은 안에서 채우기로 했습니다. 남의 잘생긴 외모를 따라갈 수 없겠지만 나름의 자긍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저 용모 단정히 하고 배움에 정진해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나는 이미 늙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문제입니다. 이제는 마음 젊은 늙은이가 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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