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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24. 신호등 20220302

by 지금은

창밖에 머무는 봄볕이 화사합니다. 노란빛이 산봉우리를 물들이더니 어느새 창틀에까지 다가왔습니다. 손가락을 내밀면 노랗게 물이라도 들 것 같은 예감에 창문을 살며시 열었습니다. 찬바람은 아니어도 어느새 코끝으로 다가온 공기는 상쾌함 그 자체입니다. 진저리를 치며 창문을 닫던 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엊그제가 그랬습니다. 날씨가 곤두박질쳤습니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은 두꺼운 패딩 옷도 모자라 안에 조끼까지 받쳐 입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창가에 머물렀던 햇살은 오늘만큼이나 따스해 보입니다. 추위에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봄은 오는가 봅니다.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살랑대는 바람이 봄임을 알아차렸나 봅니다. 부드럽게 손등을 스칩니다. 햇살을 온몸에 받고 싶은 생각에 겉옷을 걸쳤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내 생각대로 햇살이 몸을 감쌌습니다. 햇볕이 예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이 포근해집니다. 공원으로 가려고 횡단보도 앞에 섰습니다. 빨간빛이 연둣빛으로 바뀝니다. 겨우내 차가워 보이던 느낌이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친근함이 묻어나옵니다.

차들이 멈췄습니다. 내 검고 칙칙한 옷이 무서워 보이나 봅니다. 내가 횡단보도에 발을 내려놓자, 앞줄의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부동자세를 취했습니다. 몸을 곧추세우고 팔을 힘차게 앞뒤로 휘둘렀습니다. 군사훈련이라도 받는 느낌입니다. 내가 횡단보도를 벗어났음에도 차들은 움직임이 없습니다. 앞에 보이는 신호등이 붉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들을 보니 갑자기 군사경찰과 교통경찰의 멋진 모습이 떠오릅니다. 절도 있는 동작이며 단정한 복장이 맘에 들었습니다. 내가 어릴 때입니다. 차들은 이들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말에 따르기보다는 호루라기 소리와 손동작입니다. 내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입니다. 서울역, 충무로, 광화문 등의 복잡한 교차로에서 입니다. 차들은 하나같이 군사경찰이나 교통경찰의 수신호를 따라 직진, 좌회전, 우회전했습니다. 그것도 좌회전할 때는 왼쪽의 깜빡이 불을 켜고, 우회전할 때는 오른쪽 불을 켰습니다. 직진할 때는 안심이 되는지 불을 켜지 않았습니다. 차들은 어떻게 수신호를 알아차리고 달릴까 궁금했습니다. 사람보다도 더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는 게 마냥 신기할 정도입니다.


궁금증을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혹시나 시골 촌놈이라고 놀림을 받을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의문이 풀린 것은 한참 후입니다. 그동안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신호등이 드물던 시절입니다. 차가 군사경찰이나 교통순경의 지시에 따른다기보다는 군사경찰이나 교통순경이 차를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방향을 수시로 통제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들이 제가 갈 곳의 차선에 진입하여 수신호를 기다립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통경찰이 수신호를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유는 신호등 때문입니다. 조금만 복잡한 차도라면 어김없이 신호등이 있습니다. 갈래 길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주변도 마찬가지입니다. 차 먼저가 아니라 사람 먼저라는 인식이 바뀌면서 신호등이 늘어나고 교통체계도 바뀌었습니다. 횡단보도가 늘어나고 보행자 안전지역도 늘어나 차량의 속도가 상황에 따라 제한되고 있습니다.


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종종 초등학교와 중학교 앞을 지나다닙니다. 어느 날입니다. 갑자기 학교 앞의 길바닥이 짙은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노란 줄무늬도 있습니다. 신호등의 갓과 기둥도 노란색으로 물들었습니다. 기둥에는 차량의 속도를 알려주는 속도계도 있습니다.


‘당신의 속도는 이십 킬로미터.’


차가 안전지대에 접어드는 순간 속도에 따라 숫자가 바뀝니다. 삼십 킬로미터 이내의 속도로 운행하라는 큰 글씨의 제한 속도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내가 신호등을 거의 다 건넜을 무렵입니다. 적색신호로 바뀌었나 봅니다.


“적색 불입니다. 빨리 인도로 이동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신호는 빛과 손과 말, 그림, 글씨들의 어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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