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삼일절 20220301
이른 아침부터 휴대전화에서 문자 알림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늘따라 귀찮다는 마음이 들어 모른 척하려고 했으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지만 그새 두 번이나 알림 소리가 들립니다. 소식을 주어서 좋기는 하지만 가끔 확인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소리를 끌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급한 알림이거나 꼭 확인해야 할 경우 시기를 놓칠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를 켜고 문자를 확인했습니다. 동호회에서 보낸 소식입니다. 오늘이 삼일절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밤사이에 달이 바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몇 시간 사이에 날짜가 바뀌는 것을 잊고 있고 말았습니다. 동호회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만큼 이에 걸맞은 내용들입니다. 기미독립선언서, 태극기의 물결, 문학작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한 마디 준비를 해야 했는데…….
나는 아직 방관자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동호회에 가입한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잠시 동태를 살피는 중입니다. 그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내가 회원들과 어울릴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드러내는 편이 좋을지 좋지 않을지 눈치도 보는 중입니다. 알림이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고 내용을 파악합니다. 맘에 드는 경우에는 다시 몇 차례 읽어봅니다.
요즘 나에게 마음이 좀 착잡한 사건이 있습니다. 광복회 일입니다. 광복회장이 불미스러운 이유로 사표를 냈습니다. 금전과 관련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처음부터 이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반대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좌 편향의 소유자입니다. 광복회장이라면 좌우와 관계없이 모두를 끌어안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회장이 되기 전부터 치우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모임에서 다툼이 심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해서 보는 시각이 민주국가의 이미지에 맞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광복회장을 하는 동안 내내 잡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런 차에 엉뚱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공금의 횡령입니다. 회비 중 일부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증거가 확인되었습니다. 한동안 부인으로 일관하던 그는 속속 확인되는 증거 앞에 잘못을 시인하고 퇴장해야 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요즈음은 삼일절이나 광복절을 비롯한 국경일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 전과 같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관심을 두는 사람들도 줄었고 행사의 규모도 축소되었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국경일을 쉬는 날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지난날 중 국가의 행사를 잠시 떠올려 봅니다. 나는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삼일절이 되면 어김없이 국기를 집 밖으로 내걸었습니다. 삼일절 뿐인가. 다른 국가의 행사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는 국기를 내걸 수가 없습니다. 주상복합의 구조상 집마다 국기를 달 수 있는 시설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입니다. 국경일이 되면 우리는 어김없이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행사를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도화지에 정성껏 태극기를 그렸습니다. 태극기가 귀한 시절이니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손수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태극기 하나는 대문 앞에 걸고 또 다른 하나는 학교에 가지고 와야 한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수기를 만들었습니다. 수수깡은 우리 고장에서 흔하니 손쉬운 재료입니다. 태극기에 붙이면 손잡이가 됩니다. 기념식이 끝나고 줄을 지어 학교 밖을 나와 독립 만세를 외치며 정해진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국경일의 뜻과 그 정신을 기리자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어떠합니까. 국경일 날 학교에 가는 학생들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운동장에서 기념식을 하는 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쉬는 날로 인식하고 전날에 기념식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관공서에서 기념식을 하는 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다만 국경일과 관련된 단체에서 기념식을 하는 것을 볼 뿐입니다. 국경일의 의미가 점점 퇴색해 가고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국가나 국민은 발전이 없다는데 다시 한번 과거를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기를 내걸 장소가 없다는 이유로 그동안 태극기를 소홀히 했습니다. 따라서 국경일의 의미도 되새기지 못했습니다. 이번 3.1절은 무의미하게 지나갔지만, 다음 국경일에는 조용히 잠자고 있는 태극기를 꺼내야겠습니다. 벽이면 어떻습니까. 창문이면 어떻습니까. 현관이면 또 어떻습니까.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지 못해도 손으로 활짝 펼쳐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힘차게 불렀던 국경일의 노래도 가물가물합니다. 인터넷에서 찾아 따라서라도 불러볼 일입니다.
슬픈 역사든, 기쁜 역사든 함께 기억할 일입니다. 특히 나라의 아픈 과거는 더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지정학상 주위의 나라로부터 많은 외침을 받았습니다. 동존 상쟁의 아픔도 겪었습니다. 앞으로는 똑같은 일을 겪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약소민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국강병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지금은 예전의 약한 모습은 아니지만 이웃 나라들의 입김은 여전히 강합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호시탐탐 우리의 의중을 떠보고 있습니다.
평화는 국력이 강할 때만 유용합니다. 용서도 힘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십 대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자만하지 말고 국방을 튼튼히 하며 경제를 더욱 발전시키는 가운데 우리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힘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