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나물 캐는 부부 20200418
벚꽃이 날개를 달았습니다. 나비처럼 납니다. 온몸에 꽃잎을 뒤집어쓴 두 부부가 나물을 캐고 있습니다. 나는 이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관찰하는 중입니다. 궁금합니다. 무엇을 캐고 있을까. 그들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와 도구가 들려있습니다. 여자의 오른손에 쥐고 있는 것은 과도이고 남자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쇠꼬챙입니다.
나는 이곳을 좋아합니다. 심심하거나 깊이 생각이라고 할 일이 있으면 여기를 찾습니다. 대학 뒤편의 넓은 공터는 도토리가 여물어 떨어질 때를 제외하고는 조용합니다. 도토리가 사람들을 유혹하는 참나무, 아직 숲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십여 년이 지나면 큰 나무들로 이름값을 하겠다고 생각됩니다. 한옆으로 오솔길을 따라 소나무가 줄지어 있고, 벚나무들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습니다. 작은 나무들은 울타리 모양으로 물이 마른 도랑을 따라 어깨와 허리를 서로 감쌌습니다. 바람까지도 온몸으로 막아낼 것만 같습니다. 화살나무, 쥐똥나무, 홍매화, 갈대, 개나리…….
그들이 한창 정신이 팔려있는 곳은 도랑이 끝난 광장입니다. 행사나 공연을 위한 반원 모양의 객석은 층층나무처럼 단을 이루었습니다. 로마의 원형극장을 반 자른 형태라고 설명해야 할까. 나는 이 무대가 막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등받이가 없는 반원으로 이어진 나무 의자, 푹신하게 깔린 잔디와 지면과 높이가 일치하는 잘 다듬어진 타원형의 징검다리, 군데군데 그늘을 만드는 나무들.
나는 햇볕이 마음에 드는 날이면 나무를 피해 자리를 잡고, 따가운 햇볕이 마음에 들지 않는 계절에는 나무 밑의 그늘을 찾습니다. 이삼 년 전까지만 해도 잘 다듬어지고 정돈되어 깔끔하던 이곳은 물감이 퇴색된 옷을 입은 형상입니다. 그 곱던 잔디는 잡풀들 틈에 치어 자취를 감추었고 일부 보이는 것들은 털 빠진 소잔등 같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의 확산과 함께 나타난 현상입니다. 학생들의 출입이 멀어지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손길도 멈췄습니다. 그동안 나는 이곳을 내 앞마당처럼 사용했습니다. 한나절을 머물러도 나 혼자입니다. 어쩌다 학생이나 산책자 한두 사람이 근처를 스쳐 갈 뿐입니다.
나는 그동안 뭘 했나. 의자에 앉기도 하고 눕기도 했습니다. 리코더를 불고, 칼림바를 연습했습니다. 주운 도토리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세어보기도 하고 굵은 것을 골라 공기놀이도 했습니다. 앞에 보이는 바닷가를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배 한 척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배가 다니지 않으니까요. 간척사업으로 사방이 막힌 호수에는 아무리 재주가 좋은 배라도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조수 간만의 차가 있어 밀물과 썰물이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하고 갈매기들은 한가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요 며칠 사이에는 민들레꽃들이 잔디를 대신했습니다. 노란 꽃들이 바닥에 붙어 옹기종기 하늘을 보고 있습니다. 부부가 뜯고 캐는 것은 씀바귀와 민들레입니다. 나무 밑 마른풀 더미에서 껑충 머리를 내민 연한 잎줄기입니다. 꽃도 따 모읍니다. 미루어 짐작해 볼 때 그들은 민들레 잎을 나물 반찬으로 꽃잎은 차로 우려먹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봄철에 나는 새싹들은 독풀이 아닌 이상 먹어도 몸에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나도 씀바귀와 민들레를 먹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쓴맛이 맴돕니다.
“몸에 좋은 거야.”
할머니 말씀에 먹기 싫은 것을 참고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나고 나니 궁금해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민간에서는 민들레의 뿌리나 어린잎을 국거리나 나물로 무쳐 먹고, 일부 지역에서는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민들레의 꽃과 뿌리를 말려서 차로 마시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여자가 먹으면 젖이 잘 나온다고도 하여 산모에게 먹였다고 합니다. 또한 부기에 효능이 있다고 하여 환부에 민들레를 짓이겨 바르기도 했답니다. 한방에서는 민들레를 포공영(蒲公英)이라 하여 해열, 해독, 이뇨, 기관지염, 위염, 간염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합니다. 약효는 노란색 민들레보다 흰 민들레가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덤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먼 옛날에 비가 몹시 많이 내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민들레도 꼼짝없이 물에 빠져서 목숨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민들레는 너무 무섭고 걱정이 되었기에 그만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습니다. 물이 턱밑에까지 차오르자,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느님 너무 무서워요. 목숨만 살려주세요.”
그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민들레의 씨앗을 하늘 높이 날려 양지바른 언덕에 사뿐히 내려놓았습니다. 이듬해가 되어 그 자리에는 민들레의 새싹이 돋아나서 새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민들레는 하느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봄이 오면 밝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며 웃습니다.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나물을 뜯는 그들 곁을 지나칠 때였습니다.
“어르신.”
눈이 마주쳤습니다.
“별거는 아니지만 드셔보시겠어요? 쑥버무리라는 겁니다.”
동그란 그릇에서 한 덩이를 떼 내어 앞으로 내밀었다. 받아 들고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릴 적 소풍 간 기분이네요.”
쑥 개떡 생각이 났습니다.
며칠 전 쑥버무리를 먹었던 일을 먼저 떠올리지 못하고 과거로의 먼 여행을 떠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올봄에는 아내가 이삼 년 묵혀두었던 냉동 쑥 덩이를 꺼냈습니다. 내 성화 때문입니다. 곰팡이가 나겠다는 몇 차례의 말이 마음에 거슬렸는지 모릅니다. 베보자기가 낡았다고 하더니만 시장을 둘러볼 때 기억이 살아났나 봅니다.
“덕분에 봄을 잘 먹었습니다.”
부부의 텅 빈 그릇에는 잘 다듬어진 민들레와 씀바귀가 자리 잡았습니다. 또 다른 그릇에는 민들레꽃들이 햇살과 함께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