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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34. 이 봄에 20220415

by 지금은

요 며칠 사이에 봄이 얼굴을 활짝 열었습니다. 미소 덩어리입니다. 어젯밤에 비가 내리더니만 아침에는 해까지 해맑은 웃음을 짓습니다. 복수초와 매화가 봄을 알리는 눈짓을 흘리자 많은 꽃들이 앞을 다투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나를 늘 올려보는 민들레를 비롯하여 앵두, 진달래, 개나리, 산수유, 벚꽃을 비롯한 수많은 꽃이 앞을 다투어 우리 강산을 물들입니다.


요즈음은 밖에 나가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형형색색의 꽃입니다. 너무 많다 보니 ‘매우 흔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다소 비하하는 말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눈이 먼저 꽃으로 다가갑니다. 하루 종일 보아도 싫지 않습니다. 같은 음식을 자주 먹어 ‘질린다’라는 말과는 달리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사월이 시작되면서 나들이 횟수가 부쩍 늘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창밖을 내다보고 밖으로 발길을 내딛습니다. 공원으로, 개천가로, 차도를 따라, 산으로, 들판으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종종 종아리의 뻐근함을 느낍니다. 만 보만 걸어야겠다고 작정했는데 꽃들에 취하다 보니 말없이 홀로 몇 시간을 걸었는지 모릅니다. 스마트 폰에 숨어있는 만보기를 보니 삼사만 보를 걸었습니다.


아내가 말했다.


“점심은 먹은 거예요.”


“응.”


하고 대답을 해놓고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곳저곳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잊고 말았습니다. 점심때를 알았다 해도 별수가 없습니다. 점심을 사 먹을 곳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갑자기 시장기를 느낍니다. 다음에는 간식이라도 좀 챙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와 함께 나들이하는 방법도 좋을 듯싶습니다. 때가 되면 서로를 생각해서 둘 중에 누군가는 식사 얘기를 꺼낼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함께 나들이했을 때는 끼니를 거른 적이 없습니다.


어제는 아침을 먹자마자 바깥나들이를 했습니다. 해마다 봄꽃을 맞이하면서도 올해의 꽃들은 왜 이렇게 예뻐 보이는지 꽃나무들을 지나칠 때마다 주춤주춤 발걸음이 무뎌집니다. 가까이 다가가 눈여겨보고 만져도 보고 꽃 사이에 얼굴을 묻어보기도 합니다. 큰 꽃나무의 경우는 아예 밑으로 들어가 나무 기둥을 끌어안기도 하고 등을 기대어 보기도 합니다. 내 눈은 어디로 갔을까. 하늘입니다. 꽃잎들이 눈이 부신 태양으로부터 나를 감추어 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밤 같은 대낮입니다. 샹들리에 불빛이라고 이보다 더 멋질 수 있을까요. 아기자기 수놓은 전등갓의 기둥을 끌어안고 있는 셈입니다. 나를 둘러싼 나무 밑은 은은하고 화려합니다.

‘분위기(무드) 있네.’


우리 주위에 이와 같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 나 이외에 또 있을까?


나는 봄을 만끽하는 방법이 눈으로 보는 것 이외에 또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생학습관에서 ‘소리가 들리는 인문학’ 강좌를 수강 중입니다. 며칠 전에 봄철에 어울리는 음악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나는 음악 감상을 좋아하면서도 왜 철에 어울리는 음악을 모아 감상할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선생님과 두 시간 동안 봄에 관련된 음악을 묶어 함께 감상했습니다. 와! 귀가 번뜩 뜨였습니다. 머릿속은 무더운 여름날 냉면 국물을 마시듯 아니, 어느 가을날 한없이 깊은 파란 하늘 속 뭉게구름을 보는 듯했습니다. 표현이 서툴지만, 속이 뻥 뚫렸다고 해야 할까요. 곡이 소개될 때마다 잊지 않기 위해 곡명과 작곡자, 연주자들을 메모했습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대화 글을 남겼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봄 우물에 뽕 빠졌네요.”


나는 소리 없이 집을 나섰습니다.


‘봄을 두 배로 즐겨보는 거야.’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밤사이 내린 비에도 꽃들은 변함없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일 탐스러운 벚나무 밑으로 들어섰습니다. 밝은 햇살은 신부의 드레스를 밝히는 전등 불빛처럼 나무를 감싸고 있습니다. 아니 속살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투명한 바닷속을 수경으로 들여다보는 느낌입니다.

스마트 폰을 켰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 봄의 소리 왈츠(성악가 강혜정), ‘비발디의 사계 중 봄’. ‘멘델스존의 봄노래’. ‘하이든의 현악 4중주(종달새) 1악장’. ‘슈베르트의 봄의 꿈’


나는 지금 음악회에 와있습니다. 호숫가의 화려한 벚꽃을 무대로 펼쳐지는 오케스트라를 감상 중입니다. 내 손이 허공을 가릅니다. 내 몸이 들썩입니다. 내 마음이 하늘을 향해 오릅니다.


호숫가를 돌던 부부가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좋은 음악을 듣고 계시네요. 같이 감상해도 될까요.”


나는 대답 대신 손짓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들은 나무 밑으로 들어왔습니다. 내 눈을 따라 머리를 젖혔습니다.


“와, 나무 밑이 이렇게 멋질 줄이야!”


“환상의 세계 같아요.”


나는 음악 소리를 조금 더 높였습니다. 내 곁을 지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가끔 호숫가를 지나갑니다. 뒤따르는 개가 보입니다. 앞서가는 개가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일까. 소음으로 인식했기 때문일까. 몇몇 시선이 지저귀는 새소리를 따라 움직이다 멀어집니다. 잠시 새소리가 우리의 감상곡에 끼어들었습니다. 연주자가 하나 더 늘어난 셈입니다.


한 잎 두 잎 꽃잎이 날립니다. 직박구리가 휘리릭 가지를 스쳐 지나가고 갑자기 나타난 바람이 뒤따라 지나갑니다. 색종이 가루를 공중에 뿌리듯 꽃비가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너울너울 흔들리며 함박눈이 되었습니다. 작은 바람 불다 그치기를 반복했습니다. 슈베르트, 하이든, 멘델스존, 비발디, 강혜정, 요한 슈트라우스가 함께 외쳤습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너의 봄을…….’


앞에 보이는 화살나무의 어린잎을 따서 입에 넣었습니다. 입 안 가득 향기가 돕니다. 잎이 목구멍을 넘었어도 맛은 살아 움직입니다.


“그냥 먹어도 돼요?”


그들의 손도 화살나무줄기의 어린잎으로 향했습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나는 지금 이 봄을 한 몸으로 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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