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2 어느 날

33. 상춘객(賞春客) 20220410

by 지금은

요즘 며칠 사이에 텔레비전 방송에서 벚꽃의 개화 시기를 알리는 예보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등장했습니다. 제주도에서 피기 시작한 벚꽃의 물결은 서울을 향해 거침없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작년보다 이삼일 늦었지만, 서울에는 이번 주말이 절정을 이룰 것이랍니다.


내일은 벚꽃 구경을 가야겠습니다. 오전에 집 근처에 있는 대학의 구내를 어슬렁거렸습니다. 곧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입니다. 몽우리가 통통 불었습니다. 인천이 서울보다는 겨울철 기온이 높으니 당연히 먼저 개화하리라 생각했는데 올해도 서울이 먼저입니다. 아마 봄철의 기온에서 오는 차이가 아닐까 하고 내 나름대로 예측을 해보았습니다.


벚꽃에 관해 관심을 가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내 나이 사오십이 되었을 무렵이라고 여겨집니다. ‘벚꽃놀이’하면 일본을 떠올렸습니다. 벚나무는 일본의 것일 줄로 알았습니다. 우리가 국화라면 무궁화를 마음에 두는 것처럼 일본 사람들이 국화로 여기는 꽃이라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벚나무가 일본의 것에 비해 더 화려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식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일본이 미국의 워싱턴에 기증한 벚나무가 사실은 우리나라의 토박이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개나리나 벚꽃에 비해 진달래가 더 친근했습니다. 지금은 산에 나무들이 우거져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지만 그 시절만 해도 우리나라의 산은 대부분 헐벗은 민둥산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장마철이면 해마다 산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곤 했습니다. 산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키 작은 나무들입니다. 이중에도 진달래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어려운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네 사람들은 봄철 하루쯤은 꽃놀이했습니다. 화전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천렵하기도 했습니다. 찔레 순을 꺾어 먹듯 때로는 진달래꽃을 한 움큼 따먹기도 했습니다.


진달래꽃 하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기억이 또렷합니다. 어느 봄날입니다. 수업이 끝났는데도 우리는 학교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문둥병 환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결과입니다.


“문둥병이 나으려면 어린아이의 간을 빼먹어야 낫는데.”


이런 소문이 우리 고장에 퍼졌습니다. 봄날 진달래꽃이 우리 고장의 온 산을 뒤덮었습니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진달래꽃입니다. 산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며칠 전 문둥병 환자가 우리 마을에 왔었습니다. 일그러진 얼굴, 굽은 손은 보기에 흉했습니다. 집마다 동냥을 청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춘궁기이고 보니 대부분 먹을 것이 궁색했습니다. 그들에게 적선을 베풀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우리 마을을 떠났는데 오늘 다른 마을에서 발견되었던 모양입니다. 소식에 의하면 그들이 진달래꽃이 만발한 산 고개 숨어있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나타나면 잡아먹을지 모른다.’


우리는 학교에 꼼짝없이 묶여 있어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정말인가 확인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으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고학년 형, 누나들과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교문을 나섰습니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병에 걸린 그들은 잘못된 소문에 이중의 설움을 안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고 헛소문이 사라지기까지는 그 후로 몇 년이 걸렸습니다.


오늘은 휴일로 벚꽃을 구경하려는 상춘객들이 만원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뉴스 시간에 텔레비전을 보니 서울의 유명한 벚꽃 서식지는 사람들의 물결이 홍수를 이루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창경원 벚꽃놀이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맘때였습니다. 동물 구경을 할 겸, 벚꽃 구경도 함께 했습니다. 만원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우리 부부는 벚꽃 구경을 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여의도 벚꽃 길로 갈까 하다가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여의도는 몇 차례 가봤기 때문에 아직 생소한 석천호수로 정했습니다. 호숫가는 꽃나무로 터널을 이루었습니다. 그 속을 많은 사람이 걸었습니다. 어찌나 많은지 꼭 데모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같습니다. 일부러 열을 짓지 않았어도 자연스레 대열이 갖추어졌습니다. 일정한 속도로 대열이 움직입니다. 서고 걷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생각지 않은 말이 터졌습니다.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아내가 말했습니다.


“모두 혼자 보기가 아까워서 그렇겠지.”


맞습니다. 혼자 보기가 아깝습니다. 집이 멀지만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오늘 안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우리는 호숫가를 도는 가운데 여러 차례 벤치에 앉을 기회가 있었지만 느린 동작에 번번이 놓치고 말았습니다. 걷다 서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사진을 찍기도 하는 가운데 요행히 벤치에 앉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털썩 주저앉고 보니 마치 거실의 소파에 앉은 기분입니다. 전철에서 빠져나온 지 몇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늘을 올려 보았습니다. 파란 하늘에 벚꽃들을 도배해 놓았습니다. 밝은 햇빛에 눈이 부십니다. 전등이라도 켜놓은 느낌입니다. 이대로 누웠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은 한적한 곳에 자리한 벚나무를 찾아가야 합니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홀로 벚꽃아래 누워봐야겠습니다. 석양 무렵이면 더 좋을 듯싶습니다. 별이 내리는 밤중이면 어떨까요. 달빛이 가득한 밤이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2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