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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32. 잘 울어라 기타야 20220403

by 지금은

기타는 아직 젊습니다. 피부가 곱고 흠집이라곤 한 군데도 없습니다.


‘장수하겠구먼.’


그러나 젊디 젊은것이 외양은 말이 아닙니다. 기타의 집이 햇볕에 바랠 대로 바랬습니다. 손잡이의 장식은 녹이 슬어 붉게 변했습니다. 집에서 조심스레 기타를 꺼냈습니다. 내 손이 줄에 닿자 ‘드르렁’ 굵고 낮은음을 토해냅니다. 불협화음입니다. 그동안 외면했다는 불만 같습니다. 다독이듯 살며시 안아보았습니다. 거부감 없이 내 옆구리에 달라붙습니다. 마른 수건으로 몸통을 부드럽게 닦아주었습니다. 풀어진 줄을 감으며 조율했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입니다. 햇수를 세어보니 오십 년도 더 지났습니다. 기타와 나와의 인연은 스무 살 무렵입니다. 어느 날 친구의 기타 소리가 부러워 잠시 만져보고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의 연주 솜씨를 곧 따라갈 것 같습니다. 음악에 관심을 가지려면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어야지 하는 생각에 악기점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어 순조로운 만남이 이루어지고 동거가 시작됐습니다.


‘빨리 끓는 물이 빨리 식는다.’


이 속담은 나를 두고 한 말인지 모릅니다. 빠른 진척을 보이던 악기의 연주 습득이 어느 한순간에 멈춰버렸습니다. 더 이상의 진전이 없습니다. 단음은 소화할 수가 있겠는데 화음을 넣을 수가 없습니다. 왼손가락으로 줄을 정확하게 잡지 못하게 되니 노력과는 달리 악보의 화음을 살려낼 수가 없습니다.


왼손가락이 문제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해입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낫을 잘못 다루는 실수로 내 왼손의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이 잘려 나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병원 치료로 위기를 넘기기는 했지만, 기능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을 펼 수 있으나 구부리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기타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심정으로 한동안 부딪쳤으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기타는 종적을 감추었고 나 또한 잊었습니다.


내가 다시 기타를 만나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이사를 하려고 물건을 챙기는데 구석진 창가의 책장 모서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커튼으로 가려진 채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빛을 볼 일이 있겠다고 하는 심정이었을까요. 해가 들고 나는 틈에서 몸을 보호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나와 얼굴을 마주했던 기타는 새집에서도 나와는 친숙해지지 못한 채 책장 모서리에 기대어 다시 커튼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가 내 옆으로 온 것은 지난달입니다. 노인복지관에서 기타 수업 강좌가 개설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나도 한때는 기타를 좋아했던 시기가 있었지. 심심풀이로 써본 왼손 글씨가 제법 자리를 잡아 가는데 왼손잡이 기타 연주도 가능하지 않을까.’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왼손잡이 기타리스트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상하네요, 제가 뭐 잘못 보았나요.”


“예, 완전 초보라서.”


나의 대답은 선생님의 의도와는 달랐습니다.


선생님이 나에게 화면을 통해 내 손과 기타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 달라고 합니다.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한 번 더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저 지금 기타를 왼쪽으로 하고 있습니다. 왼손 기타입니다.”


“아, 예! 기타 줄을 바꾸셨나요?”


“제가 왼손에 장애가 있다 보니 지판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어서 낯선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강사의 지시대로 음을 짚었습니다. 박자를 배웠습니다. 곧잘 따라 한다고 생각했는지 처음이냐고 물었습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왼손과 오른손을 바꾸어 기타 줄의 음을 짚는 것은 분명히 처음입니다. 몇 분이 흐른 후 재차 물었습니다. ‘예’ 대답하고, 악보는 잘 읽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실력 향상이 기대됩니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근심 반, 두려움 반이 사라졌습니다.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느냐는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 덕분입니다.


나는 기타에 대해서 정식으로 배워본 일이 없습니다. 책을 보거나 남의 연주 모습을 어깨너머로 습득했습니다. 오늘은 생각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악기의 조율에 대한 문제입니다. 내 나름대로 음을 맞게 조율했다고 믿었는데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몇 분간 선생님의 기타 음과 내 기타 줄의 음을 맞추느라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강습생 한 분이 말을 했습니다.


“조율기가 있어야겠다는 걸요. 저는 기타 조율에 자신이 없어 조율기를 이용해요.”


처음 들어본 말입니다. 강사분도 조율기가 있으면 좋다고 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찾아보았습니다. 이렇게 종류가 많을 줄이야. 값도 천차만별입니다. 선생님께 조언을 부탁할 걸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쇼핑몰에서 구매자의 후기를 살펴보고 그중 하나를 선택했습니다.


며칠 후 기기를 샀습니다. 사용 설명서를 읽으며 기타를 조율했습니다. 음의 차이가 크게 나서 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부딪쳐 볼 일입니다. 기타를 배우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내 악기의 음색은 동떨어진 곳에서 머물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무슨 일이든 정식으로 배워야겠다.’


나는 탁구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늘 초보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깨너머로 배운 탓도 있습니다. 기본기를 제대로 배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후 내 자세를 고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급할 때는 본연의 잘못된 자세가 나옵니다. 수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시절 미역을 감으며 마구잡이로 헤엄을 치던 습관이 수영장에서는 웃음거리가 된 일이 있습니다. 물에 뜨는 데는 별문제가 없지만 자세나 빠르기가 문제입니다. 영법을 익히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빚어낸 일입니다.


“소리가 너무 큰 것 같아요.”


기타의 느슨했던 줄이 팽팽해지다 보니 전과는 달리 소리의 강도가 높아졌습니다.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는 느낌이 스스로 감지가 됩니다.


‘매일 조금씩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이제 시작했으니 초보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나에게는 초보라는 딱지가 이렇게 많은지, 악기 다루기, 수영, 글쓰기, 그림 그리기……. 백 세를 향하다 보면 하나쯤은 앞서는 게 있지 않겠나 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글처럼 나도 희망으로 삽니다.

그러니 잘 울어라. 기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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