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색종이 마음 20220402
낯 모르는 아이 엄마가 내 앞으로 원반 모양의 노란 덩이를 불쑥 내밀었다. 투명 비닐봉지에 담겨있다. 내 손에 느끼는 촉감은 따스하고 가볍다. 순간적으로 떡 아니면 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니.”
나는 손을 좌우로 흔들며 사양했다.
“어르신, 또 있어요. 예쁜 것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녀는 거절하지 말라는 의미로 종이봉투에서 또 다른 덩이를 꺼내 보였다. 아이는 색종이를 들고 신기한 듯 요리조리 살피고 있다. 아기 엄마의 눈이 꼬마의 손으로 옮겨갔다. 눈들이 한 곳으로 모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해야지.”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전동차가 두어 정거장을 지났을 무렵이다. 칭얼대는 아이에게 내 가방을 열고 그동안 접어 두었던 색종이 컵 받침을 한 장 꺼내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모자의 반응이 생각 외로 좋아 보여 세 장을 더 주었다. 모양은 같아도 무늬는 모두가 다르다. 처음 준 것에 비해 더 화려하고 아기자기하다.
내가 아이를 보고 가방의 지퍼를 여는 순간 아내는 손을 슬그머니 잡으며 귀엣말했다.
“주지 말아요.”
전에도 나에게 몇 차례 말한 적이 있었다. 코로나가 생기고 나서부터의 일이다. 요즈음 엄마들은 아이의 위생에 특별히 신경을 쓰기 때문에 낯 모르는 사람이 무엇인가 주는 것을 탐탁해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찮은 색종이를 주고받는 동안 아이와의 접촉이 부모의 신경을 건드릴지 모른다는 이유다. 지금은 상대편의 반응이 좋으니 대성공이다.
내 가방에는 늘 몇 가지의 색종이 작품이 들어있다. 이것의 지퍼가 열릴 때는 대중교통 이용 시 상대방이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 오늘처럼 아이를 볼 때, 음식점에서 기대 이상의 좋은 느낌을 받았을 때, 낯선 고장에서 가야 할 방향이나 위치를 물었을 때 등이다.
차 안은 때때로 답답하고 불편한 장소임이 틀림없다. 아이는 차에 오르자마자 짜증이 이어졌다. 퇴근 시간이어서인지 실내가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그들의 틈을 비집고 겨우 창가로 다가섰다. 내가 자리를 양보하려 했지만 아이 엄마는 한사코 만류했다. 아이에게 하는 말이다.
“열두 정거장만 가면 돼요. 조금만 참으면 돼, 너를 제일 귀여워해 주시는 왕 할머니를 뵈 러 가는 길이잖아.”
잠시 반색하던 아이는 혼잡한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짜증을 부렸다. 다시 서너 정거장을 지났을 무렵이다. 아이 엄마가 힘들겠다는 생각에 내가 끼어들었다. 작은 색종이가 위력을 발휘했다. 엄마가 말했다.
“참 예쁘지. 모양도 색깔도 멋지네. 집에 가면 빈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자.”
“정말!”
“그래, 아빠도 좋아할걸.”
색종이 컵 받침이 모자의 시선을 끌었고, 생각지 않은 빵이 내 손에 들려졌다. 답례품인 셈이다. 온기가 살아있는 노란 빵, 살처럼 부드럽다.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아이의 왕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임이 틀림없겠다고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기야 나도 이 빵을 좋아한다. 맛이 없는듯하면서도 맛이 있는 빵이다. 달지도 짜지도 않은 약간의 막걸리 냄새를 지닌 무미건조한 빵이지만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언젠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만둣집이 눈에 들어왔다. 초겨울이다. 김이 오르는 만둣가게 앞에는 먹음직스러운 커다란 술빵이다. 아내의 손을 끌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밀가루가 뭐, 속에 좋을까.”
속이 가라앉았는지는 몰라도 내 입은 술빵을 잘 받아들였다.
내 옆자리가 비었다. 아이의 손을 잡아 자리에 앉혔다. 갈 길이 먼데 지루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지막 카드로 다른 모양의 색종이를 꺼냈다. 일명 ‘아코디언’이다. 아코디언의 바람 주머니처럼 폈다 접기를 반복할 수 있다.
“너, 노래 잘하는 것 같구나?”
나는 아코디언처럼 주머니를 폈다 접기를 반복하며 리듬에 맞추어 ‘인디언’ 노래를 했다.
한 꼬마 인디언, 두 꼬마 인디언, 세 꼬마 인디언…….
“왕 할머니 만나러 가니 기쁘지.”
“네.”
“아코디언에 맞추어 할머니께 노래 불러드리는 거야.”
아이의 눈이 엄마의 얼굴로 향했다. 엄마의 미소가 반짝했다. 아이의 손이 내 아코디언으로 옮겨왔다. 아코디언을 잡고 내 하던 손동작을 흉내 내어 폈다 접기를 반복했다. 몇 차례 반복 끝에 손에 익숙해졌다.
옆에 있던 어느 할머니가 관심을 보였다.
“손수 만드셨나 봐요?”
“하나 드릴까요.”
“우리 손녀가 좋아하겠구먼.”
나는 가방에 손을 넣었다. 아코디언도 컵 받침도 손에 만져지지 않는다. 자꾸만 책이 손등을 누른다. 가방을 열고 속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접어놓은 게 떨어졌다며 그분에게 했던 말을 걷어들어야 했다. 대신 더 작은 색종이를 꺼내 재빠르게 작은 나비 한 마리를 접어서 건넸다. 코로나가 물러가고 봄이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가 다시 나비에 관심을 기울였다.
“나비 갖고 싶니?”
머리를 끄덕였다.
“같이 접어볼래?”
모자에게 한 장씩, 할머니에게 한 장, 나도 한 장. 시범을 보이려는 순간 내 손을 바라보던 앞에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따라 여덟 개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정거장을 지났을 때 다섯 마리의 귀엽고 앙증맞은 나비가 탄생했다. 나는 그들에게 같은 크기의 색종이를 두 장씩 주고 작별 인사를 했다. 아이의 엄마가 말했다.
“네 정거장만 가면 돼.”
손이 꼬물꼬물 움직인다. 내가 ‘안녕’이라는 인사에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대신 엄마가 두 번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이가 오늘 있었던 일을 왕 할머니께 자랑하고 재롱을 떨었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가방 속에서 빵의 온기는 내 마음만큼이나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