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봄소식 20220330
여기저기서 봄꽃 소식이 들려옵니다. 내 마음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따스한 풍경이 눈앞에서 알짱댑니다.
고향 친구한테서 문자가 왔습니다. 전 달에는 매화 가지, 이달 초에는 산수유 가지를 담았습니다. 좁쌀 같은 꽃망울입니다. 이번도 혼자 보기가 아깝다며 활짝 핀 개나리를 화면에 가득 담았습니다. 한 장에는 개나리의 줄기들이 하늘을 향했습니다. 또 다른 한 장에는 절벽에서 줄기를 수양버들처럼 아래로 길게 늘어뜨렸습니다. 서로 대비가 되도록 구도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종류의 개나리꽃임에도 불구하고 느낌이 다릅니다. 해마다 보는 꽃이지만 새로 피어나는 것은 늘 낯설게 다가옵니다. 많이 보아 눈에 익었지만, 새봄의 꽃들은 새롭습니다.
모를 일입니다. 내가 개나리를 떠올리는 순간 ‘개’라는 글자가 머릿속으로 찾아왔습니다. 개나리는 분명 작고 귀여운 꽃입니다. 그런데도 ‘개’를 떠올리다니. 개나리와 멍멍이와는 어떤 연관도 없는데 말입니다.
‘오뉴월에 개 패듯 한다.’
어려서 어른들로부터 가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개를 도살하는 장면을 본 일이 있습니다. 복날이라며 동네 어른 중 한 사람이 개를 잡았습니다. 개를 나무에 매달고는 큰 몽둥이로 인정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심한 매질에 몇 번의 울부짖음이 있었고 마침내 명이 끊겼습니다. 그 광경이 어린 마음에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불쌍하고 애처로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개는 사람과 친근하면서도 한편 사람들에게 하찮은 동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만도 못한 놈.’
사람으로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을 경우 이르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개에 비유하는 말이 생겨났을까? 하는 짓이 못나서, 아니면 주인을 몰라봐서 그도 아니면 사람을 물어서일까. 소, 말. 양. 닭 등에 비해 효용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일까.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봤지만, 필요한 정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요즈음은 개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에 화를 낼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왜, 개가 어때서요.”
개를 애지중지 키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업신여기던 개가 어느새 반려동물이 됐습니다. 우리의 주변에서는 개를 아기 키우듯 돌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옛날과는 달리 많은 견공이 실내에서 함께 생활합니다. 그들에게 옷을 입히고 미용도 시키고, 함께 산책하기도 합니다. 또한 먹이는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이 아니라 특별합니다. 공원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애견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개 유치원에 보낸다고 합니다. 궁금해서 귀를 쫑긋했더니 그곳에서 예절과 놀이를 배운다고 했습니다. 과거라면 꿈에라도 나타나지 못할 광경입니다.
나는 개를 비롯한 동물을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처럼 개를 돌봐야 한다면 아이 한 명 키우는 수고는 각오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일까요. 미래를 예견하는 사람들은 인구가 점점 줄어 걱정이라는데, 개를 키우느니 차라리 아이를 한 명 더 낳아 키우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이겠다 싶습니다.
평소에 개나리를 우습게 여겼기 때문일까. 개나리가 곱고 예쁘기는 해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꽃이라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조상들이 부쳐준 이름을 열거해 보면 친근한 꽃이기는 하지만 개나리가 인기 높은 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리꽃의 종류는 많습니다. 참나리 땅나리, 털중나리, 말나리, 섬말나리, 하늘말나리, 솔나리, 흰나리, 하늘나리. 이 많은 나리 중에 이름이 개나리라니, 더구나 개나리는 앞의 나리들과는 외양부터 차이가 납니다. 개나리가 왜 나리꽃에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꽃의 크기가 작을뿐더러 모양이나 색깔도 다릅니다. 한 마디로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개' 자가 들어간 것 치고는 볼품이 없습니다. 그 예가 개복숭아, 개살구입니다. 크기도 그러려니와 외양이나 맛이 복숭아나 참살구와 비교가 됩니다. 한 마디로 생김새가 초라합니다. 맛은 시고 떨떠름합니다. 개망초도 망초에 비해 꽃이 초라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개똥참외도 있습니다.
지난해의 일입니다. 식목일 날 조부모님 산소에 갔습니다. 선산을 둘러보던 중 개나리가 성큼 눈에 들어왔습니다. 산소 주변을 울타리처럼 둘러싼 개나리입니다.
‘너무 무성한 걸.’
가지를 솎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낫을 들었더니 형님이 만류했습니다. 꽃이 소담스럽다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릅니다. 사촌 동생 몇 명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낫을 거두었습니다.
꽃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었습니다.
“우리 인천대공원 가야지.”
“바깥이나 보고 말해요.”
사람이 오가는 길에 우산이 보입니다. 어느새 비가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비가 그치고 나면 식물들은 한층 생기를 얻을 것입니다.
곧 사월이 돌아옵니다. 개나리와 벚꽃놀이도 가야 합니다. 여의도, 석촌 호수, 하늘공원……. 다음 달은 상춘객으로 살아볼까 싶습니다. 내가 잠시 ‘개' 자를 떠올리기는 했어도 뒤를 돌아보면 개나리는 내 마음속에 늘 정겨운 꽃입니다. 머릿속에는 고향 집 울타리의 개나리꽃과 어젯밤 깨어난 노랑 병아리가 이른 아침부터 노란 햇볕 속에서 재잘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