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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Oct 31. 2024

2022 어느 날

40. 빨대 20200427

그곳에 있었습니다. 한 묶음 집어 들었습니다. 칼을 가져왔으면 좋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음료수 탁자 앞을 벗어나 휴게실 자리에 앉자마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 많은 것을 뭐 하게.”


“여섯 개밖에 안 돼.”


“음료수는 두 병인데 병마다 세 개를 꽂으려는 거야.”


“그게 아니고 뭘 만들어 보고 싶은 거지.”


나는 지금 허수아비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는 중입니다. ‘질라래비훨훨’ 허수아비 놀이입니다. 아내의 의아해하는 표정에 설명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입구에 서 있던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영화 상영시간이 되었으니 빨리 입장을 하라는 외침입니다. 아내가 앞장을 서자 뒤를 따랐습니다. 순간에도 아내에게 설명할 내용들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나는 어쩌다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의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광고지, 이쑤시개, 병뚜껑, 와셔 같은 물체가 눈에 뜨이면 가끔 몇 개씩 손에 쥡니다.. 이럴 때마다 아내는 어린아이 나무라듯 나에게 눈총을 줍니다. 하찮은 물건에 욕심을 내느냐는 말입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내 마음을 읽지 못해 일어나는 일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빨대를 꺼냈습니다. 칼도 꺼냈습니다. 뭔가 만들어 보겠다고 준비하는데 가느다란 빨대가 없습니다. 분명 집에 있을 줄 알았는데, 있을 만한 곳을 뒤져보았지만 끝내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음료수 작은 빨대 어디 있어요.”


“다 썼어요.”


“에이, ‘질라래비’ 만들어 볼까 했는데.”


“질라래비가 뭔데 그래요.”


“그런 게 있어요.”


결국 만들고 싶은 생각을 접어야 했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질라래비를 만들어 함께 놀았습니다. 저학년 때의 일입니다. 보리타작, 밀 타작이 시작될 무렵이면 새로운 장난감이 나타납니다. 새로운 물건이라고는 하지만 때에 따라 해마다 그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겨울이면 썰매, 연, 팽이 등, 봄이면 버들피리, 굴렁쇠, 여름이면 질라래비, 여치 집…….


여름방학 숙제 중 만들기가 있었습니다. 나는 몇 년 동안 여치 집을 만들어 제출했습니다. 일 학년 때는 고모가 숙제를 대신했지만, 다음엔 내가 만들었습니다. 이름만 여치 집일 뿐 여치가 살 수 없습니다. 여치나 메뚜기, 귀뚜라미를 잡아 집에 넣어본 일이 있습니다. 적응하지 못한 결과일까. 다음날 확인해 보니 죽었습니다. 집이 작아서일까 하는 마음에 크게 만들었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장난감은 장난감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질라래비에 관해 말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뜻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할 뻔했습니다. 질라래비는 허수아비라고 여겼는데 아리송한 느낌이 들어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질라래비’는 잠자리의 경상도 방언입니다. 그러고 보니 밀집으로 만든 질라래비는 잠자리였습니다. 굵은 밀집에 칼집을 내고 작은 밀집을 반으로 갈라 양옆으로 꺾어 집어넣습니다. 사람의 팔이 되는 셈입니다. 갈라진 틈이 벌어지지 말라고 밀집을 짧게 잘라 윗부분을 뒤집어씌웁니다. 모자를 씌웠다고 해야 할까요. 설명으로 완전한 이해가 될 수 없겠지만 이렇게 해서 질라레비가 완성되었습니다. 가는 밀집의 줄기를 밀어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면 팔이 아래위로 움직입니다. 잠자리의 날개인 셈입니다. 이해가 잘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나름대로 설명했습니다. 아직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생각대로 잘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요즈음은 음료수 빨대로 플라스틱 재료가 대세입니다. 예전에는 빨대를 사용하는 일이 드물었지만 사용해야 할 경우 식물의 줄기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밀짚, 보릿짚, 민들레 줄기, 호박잎 줄기, 머위 줄기 갈대의 줄기. 대나무 등이 있습니다. 빨대라고 말하기보다는 대롱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했다고 여겨집니다. 대나무 줄기와 머위 줄기. 호박잎 줄기는 물레방아 놀이를 할 때 제격이다. 장마철이면 도랑에서 장난감 물레방아를 돌리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이 나이에도 젊은 시절보다 어린 시절의 모습을 더 떠올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동심이 더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일까. 젊은 시절의 고달픔이 생각을 가로막고 있나 봅니다. 두 시기를 견주어 볼 때 젊은 시절은 늘 시간에 쫓기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삶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나 혼자만이 현실은 아니지만 직장에서의 주어진 역할, 가장으로의 책임이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오늘은 마트에서 음료수를 사면서 한 귀퉁이에 놓여있는 가는 빨대를 여유분으로 가져왔습니다. 질라래비를 만들어야 합니다. 서랍을 열었습니다. 굵은 빨대가 보이지 않습니다.

“작년에 가져온 굵은 빨대 어디 있어요.”


“그게 여태까지 남아있겠어요.”


이러다가는 끝내 질라래비를 만들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밀밭, 보리밭,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극장은 폐쇄된 지 오래됐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야구장, 축구장, 배구장 등을 비롯하여 다중시설은 많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믿을 곳은 커피숍입니다. 컵을 받아 들면서 몇 개의 빨대를 챙겼습니다.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뭐, 또 빠뜨린 것은 없는 거야.’


질라레비가 춤을 춥니다. 누가 더 멋지게 날 수 있나 견주어 보는 거야. 밀잠자리. 명주잠자리. 고추잠자리, 실잠자리, 물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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