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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01. 2024

2022 어느 날

41. 그림을 쓰다 20220427

“졸지 마.”


“예술, 나는 잘 몰라요.”


‘예술, 가까이 더 가까이. 만만하게 더 만만하게.’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면 왠지 내 초라한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림에 호기심이 있어 마음먹고 찾아가기도 하지만, 길을 가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개인전 포스터를 보고는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진이나 그림 전시회장에 들어갈 때는 입구부터 마음은 다른 행성에 다가간 느낌입니다. 호기심에 그만 내가 없는 양 슬그머니 문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아무도 없다는 안도감에 첫 그림 앞에 다가섭니다. 옆 액자 속으로 내 눈이 빨려 들어갈 즈음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작가나 큐레이터로 짐작되는 여인이 내 옆으로 다가섰습니다. 나와 눈을 마주칠 기미가 보이자 슬금슬금 옆 그림으로 눈을 움직였습니다.


‘내 곁으로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의 입 밖으로 내가 모르는 고급스러운 단어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주춤거리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내가 그림을 감상한 것인지 그림이 나를 쳐다본 것인지 헷갈립니다. 나는 그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미술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생각만큼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한때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문화회관에서 기초를 다지느라 노력했고 도서관에서 미술사에 대한 책을 빌려 읽어본 일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미술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 다행입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일도 힘들지만, 감상 자체가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추상화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안목이 좁아서일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할 경우가 있습니다.


‘졸지 마.’


마음속으로 되뇝니다. 신이라면 몰라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있을까. 보고 안 보고는 내 맘이고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내 맘입니다.


며칠 전 인사동 길을 걷다가 미술 개인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문을 밀치자 ‘딸랑딸랑’ 문에 달린 종이 나를 반겼습니다. 맑고 고운 음색입니다. 내가 그림에 다가가기도 전에 작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가벼운 목례를 했습니다. 우선 실내를 휘둘러보았습니다. 풍경화의 느낌입니다. 선과 면을 강조한 간결하고 단정한 구성입니다. 이 정도면 나뿐만 아니라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도 무난히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쉬운 그림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처음 그림부터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품 앞에서 멈추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코가 그림 가까이 다가갔다가 뒤로 서너 발짝까지 물러서고 다시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어느 그림 앞에서는 내 동선이 길어지고 자신이 그림으로 들어가 있다는 착각을 했습니다.


내가 그림을 보는 모습이 이상했을까요. 작가가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그림 좋아하세요?”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림을 보는 안목이 부족해서 말하기가 좀 쑥스럽습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린이의 마음이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이어 그림을 보는 사이에 틈틈이 작가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면 좋은 것입니다. 남의 눈으로 보지 말고 나의 눈으로 보면 됩니다. 안목이란 좋고 나쁜 것을 고르는 분별이 아니라 나에게 좋은 것을 고르는 취향일 뿐입니다. 좋은 감상을 위해서는 멋대로 느껴봐라. 감상의 강박에 빠질 필요는 없다. 느리게 걷고 천천히 보는 시간에 집중하라. 가운데를 먼저 보고 네 귀퉁이까지 꼼꼼히 바라보라.


‘그림 속에 내가 쑥 들어갔다면! 상상하고 그린 사람의 마음도 생각해 보세요.’


그림 구경이 끝나자, 도록을 내밀었습니다. 커피도 함께 한 잔 마셨습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아크릴을 주된 원료로 한 그림을 그린답니다. 내가 생각했던 방법과는 반대입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중 중간에 있는 노트북을 보았습니다. 화면에 점과 선과 면이 조합된 그림이 연속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이 공간에 있는 그림들은 컴퓨터로 기초 작업을 해서 프린트를 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내 나름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말은 정반대입니다. 작품을 만들고 난 후의 컴퓨터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을 보는 일 못지않게 경험을 서로 나눈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그들만의 세상도 있으니까,

졸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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