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2 어느 날

57. 깜빡이야 20220830

by 지금은

글쓰기 수업 강의를 듣기 위해 건물 입구를 막 들어섰을 때입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동료가 눈에 띄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참 오랜만입니다.”


내가 반갑게 인사를 했음에도 반가워하는 얼굴과는 달리 당황해하는 표정입니다. 곧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입과 코를 가렸습니다.


“깜빡 잊고 마스크를 하지 않고 왔지, 뭐예요. 수강 등록을 해야 하는데 되돌아가야 할까 봐요.”


“아, 예. 저에게 예비 마스크가 있는데 드릴게요.”


가방을 열었습니다. 있어야 할 곳에 마스크가 보이지 않습니다. 안을 천천히 뒤졌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랬었지.


며칠 전 전철역에서의 생각이 났습니다. 은행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승강장 의자에서 전차를 기다리는데 한 사람이 내 옆자리를 파고들었습니다. 순간 내 옆에 간격을 두고 앉아있던 여자애가 힐끗 노인네를 쳐다보고는 재빨리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무심코 앉아있던 나는 갑자기 열기를 느꼈습니다. 그의 어깨가 내 어깨에 닿았습니다. 무더위에 그의 몸은 달아올라 있었나 봅니다. 내가 풍채 좋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민얼굴이 드러났습니다. 나는 화끈한 열기에 몸을 일으켜 두어 걸음 옆으로 비켜섰습니다. 힐끔힐끔 곁눈질하는 주위 사람들의 눈길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 또한 잠깐이지만 좋은 느낌은 아닙니다. 표정으로 보아 그는 지금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분은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은연중에 뭇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것입니다.


‘아! 그렇지. 내 여분의 마스크.’


나는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 그 사람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연세가 많은 노인은 아직도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나 봅니다. 내가 쥐여준 마스크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나는 손을 입언저리로 가져가며 표정을 살폈습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나는 다시 마스크를 빼앗아 흔들어 보이고는 포장을 뜯었습니다. 다시 손에 쥐어 주며 입과 코를 가리켰습니다. 그제야 그는 상황을 인식하고 마스크를 썼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는 전차가 들어오자, 사람과 자연스레 뒤섞였습니다.


내가 동료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사이에 다른 동료가 다가왔습니다.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머뭇머뭇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나 마스크를 잊고 왔어요.”


내가 말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회관에 비상용 마스크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알아볼게요.”


나는 옆 사무실로, 한 사람은 이층 사무실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잠시 후 나는 마스크를 얻어 들고 와 그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입을 가리는 순간 이층에 갔던 사람도 마스크를 들고 다가왔습니다. 다음에 비상용으로 사용하라며 건넸습니다. 그녀가 수강 신청을 하려고 줄을 섰을 때 우리는 수업 시간이 되어 위층으로 향했습니다.


함께한 그녀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밴듯합니다. 여러 해 동안 총무 일을 맡았습니다. 그의 가방은 늘 불룩합니다. 필요에 따라 휴지, 마스크, 상처를 가리는 밴드, 바늘과 실이 등이 나오기도 합니다. 준비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봅니다. 전에는 말복이라며 시장에서 수박을 사서 카트에 담아서 왔습니다. 동료들과 맛있게 먹기는 했지만, 팔십 먹은 노인네가 가파른 비탈길을 끌고 온 일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동료들이 고마움을 표시하자 미소를 지으며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아직은 뭐, 괜찮아요. 하루에 열 번이라도 할 수 있는걸요.”


나는 슬그머니 삼색 볼펜을 하나 내밀었습니다.


“이런 걸 뭐, 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2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