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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60. 선생님 20220831

by 지금은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구나. 농사꾼으로 평생을 살아온 내가 이 동네에서 선생님 소리를 다 듣는다.”


내가 삼촌을 뵙기 위해 아파트를 찾아갔을 때의 하신 말씀입니다. 관심을 보이자,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삼촌이 고향을 떠나 이사를 한 아파트 주위에는 공터가 많습니다. 막 도시 개발을 시작한 곳이고 보니 아파트 몇 동이 넓은 공간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획정리를 한 땅에는 아스팔트 길이 사방으로 이어지고 그사이의 공간에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늘 부지런히 살아온 삼촌은 소일거리가 필요했습니다. 농사일이 몸에 밴 삼촌은 구청이 마련해 준 텃밭에 호박 몇 포기, 가지, 고추, 상추……… 등을 심어 가꾸었습니다. 이곳 주민 중에 농작물에 관심이 있는 몇 사람 있나 봅니다. 함께 오밀조밀 채소를 심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의 솜씨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삼촌이 심어 가꾼 농작물이 유난히 도드라졌습니다. 틈틈이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삼촌의 채소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시기에…….”


틈틈이 조언을 듣던 그들은 하나둘씩 삼촌을 선생님으로 호칭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삼촌은 이곳에서는 선생님으로 불릴만합니다. 평생을 농사꾼으로 살아온 이상 웬만한 농작물을 키우는 데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복토와 파종, 퇴비, 가꾸기, 갈무리까지 흙과 씨앗과 함께 생활해 오지 않았습니까. 작은 체구로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내가 생각하기에 한 가지 풀지 못한 숙제가 있습니다. 마늘 농사입니다. 해마다 마늘을 심지만 결과는 늘 수확량이 빈약합니다. 어느 날 뜬금없는 말을 했습니다.


“힘들여 마늘 농사를 짓느니 차라리 사다 먹는 게 더 이익이겠다.”


마늘을 까보면 쪽이 너무 많아 알맹이가 작습니다. 종종 마늘을 까라고 심부름시킬 때면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삼촌도 결과를 스스로 느꼈는지 해마다 방법을 달리했지만, 끝은 비슷했습니다. 윤작하면 좋다고 해서 파종 자리를 옮겼습니다. 심을 시기가 맞지 않은 것 같다며 시기를 앞당기거나 늦추기도 했습니다. 거름도 달리했습니다. 마늘종을 뽑기도 하고 그대로 두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의 마늘 농사는 늘 그러했습니다.


어느 날 삼촌이 말했습니다.


“마늘은 육 쪽마늘이 최고라는데……….”


그 후 마늘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쪽수가 적고 굵은 마늘이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곧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삼겹살을 먹는데 마늘을 곁들였습니다. 옆 친구가 상추에 고기와 마늘을 얹으며 말했습니다.


“의성 마늘이 최고인데, 이게 육 쪽마늘은 아니겠지?”


나는 어릴 때 보아 온 마늘 농사가 기억나서 말했습니다.


“육 쪽마늘 구경도 못 했는데.”


친구가 육 쪽마늘에 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입하가 지나면 마늘종이 올라오고 중간에 오돌토돌한 게 점점 자라 손가락에 반지를 낀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게 종자 마늘입니다. 마늘을 캐고 나서 종자 마늘을 부숴보면 한 개에서 수십 개의 알갱이가 쏟아집니다. 이 씨앗을 일 년, 이년, 삼 년……. 심다 보면 한쪽이 두 쪽으로 두 쪽이 세 쪽으로 늘어나 육 쪽마늘이 됩니다. 육 쪽마늘을 다시 심으면 어떻게 될까. 다음 해에는 쪽 수가 더 늘어나게 됩니다.


마늘종을 뽑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양분이 마늘종으로 올라가 실한 마늘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마늘의 용도에 따라 관리를 달리 해야 합니다. 씨 마늘로 남겨야 할 것인가 마늘종을 이용할 것인가입니다.


“알면 고향에 살 때 진작 말해줄 것이지.”


“내 딸 친정집이 의성이잖아, 마늘 농사에 대해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어.”


나는 이야기 중 좀 더 궁금한 것이 있어 책을 찾아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삼촌께 작별 인사를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새로 조성된 아파트의 주변은 한동안 교통이 불편합니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삼촌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셨습니다.


“버스 떠날 줄 알고 마음이 급했네.”


삼촌은 별거 아니라며 불룩한 종이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약을 치지 않은 청정 채소랍니다. 버스에 올라 봉투를 열어보았습니다. 애호박 두 개, 오이 세 개, 상추 한 묶음, 고추 한 주먹이 들어있습니다. 모두가 싱싱합니다. 가게에서 사 오는 채소와 견주어 보아도 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윤택이 납니다.


다음번에 찾아뵈었을 때는 마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년에는 마늘 농사 한번 잘해보시겠다고 합니다. 끊임없는 도전, 삼촌은 선생님 소리를 들을 만도 합니다. 노력이 얼마이고, 연륜이 얼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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