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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65. 그림책 자서전 20220912

by 지금은

그림책 자서전, 두 번째 시도입니다. 아니 한 번이 맞습니다. 한 번은 실패작이었으니까. 책에 오자가 있다니…….


잠에서 일찍 깨어났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입니다. 방범등과 가로등이 곳곳에서 눈을 고정한 채 주위를 둘러봅니다. 우리 아파트의 바깥 등은 키가 작은 것을 자랑이라도 하는 양 앉은 자세로 눈을 깜빡이며 밤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화장실을 들렀습니다. 다시 잠이 들어야 하는데 오늘은 밤을 지새워야 할까 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삼일 전 아침을 먹었는데 속이 매슥거립니다. 좀 지나면 날 거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습니다. 저녁에야 약을 지어먹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굶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음식을 입에 넣지 않기로 했습니다. 기력이 떨어졌기 때문일까 낮이나 밤이나 잠을 잤습니다.


일찍 잠에서 깬 나는 숙제 아닌 숙제를 했습니다. 복지관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그림책 자서전 만들기 수업이 있다기에 신청했는데 첫 수업 후 자서전의 얼개를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평소에 생각한 바가 있어 시간이 나는 대로 계획을 세워보고 그림도 그려보았습니다. 나름대로 완성을 해놓았는데 강사가 요구하는 쪽 수와 맞지 않습니다. 그냥 가져가서 상담을 해볼까 했는데 잠이 오지 않으니 한 번 더 점검을 해보기로 하고 컴퓨터를 켰습니다. 표를 만들고 내용을 삽입하는 동안 일부 내용을 수정해 봅니다. 강사는 그림에는 걱정을 말라고 했습니다. 어르신을 위한 배려랍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도 할 방법이 있다며 본보기를 몇 권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진, 그림 오려 붙이기, 색종이 접어 꾸미기 등 방법은 다양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그려야겠습니다. 모형 북을 만들어 놓았으니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해보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서재에 불이 밝혀지자 무슨 일인가 싶었는지 잠에서 깬 아내가 슬며시 다가와 들여다보고는 침실로 말없이 돌아갔습니다.


이번에는 실수가 없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번에는 생각했던 것과는 그림책의 구성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친절을 베푼다고 도우미를 한 사람씩 붙여주었는데 그림책 만들기는 무경험자입니다. 더구나 나와 교감이 잘되지 않습니다. 내가 말을 하면 들었다가 타자를 해준다고 합니다. 나는 타자도 할 수 있고 나름대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의를 제기해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했습니다. 시간은 촉박했습니다. 원고가 완성되면 수정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작 본인에게는 보여주지 않고 다음 주에 완성본을 주었습니다. 내용이 다소 맞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오자와 탈자가 있습니다. 책을 받아 든 몇몇 수강생은 나처럼 얼굴색이 밝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점검의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마음에 드는 책을 완성했으면 좋겠는데 걱정이 앞섭니다. 아무래도 강사에게 시간을 두고 원고를 충분히 검토하고 교정을 충실히 하자고 말해야겠습니다.


첫 번째 만든 그림책은 그림의 색감이 다소 미흡하기는 해도 내용의 흐름이 좋았습니다. 형님의 손자들에게 한 권씩 나눠주고 몇 권은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여동생의 손자가 태어났으니, 글자를 깨치고 나면 선물할 생각입니다.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동생의 말 흐림 속에 형님의 손자에게는 선물했는데 나의 손자에게는……. 하는 서운한 눈치가 보였습니다.


나는 동화, 시, 수필을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가끔 말합니다.


“책을 내시지요. 실력으로 보아 내고도 남을 터인데…….”


“아직 더 갈고닦아야 하겠습니다.”


책을 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리 재고 저리 재다 보니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렇다고 내가 만든 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림책입니다. 생각지 못했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림책을 무료로 만들어준답니다.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림책 만들기를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을 했지만 흡족했습니다. 다음은 우리 집과 거리가 가까운 도서관에서 책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글쓰기를 수강하는 노인회관의 문우들을 제외한 그림책에 관심이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복지관에서의 그림책 자서전은 남에게 보여주기가 민망하기에 책장의 한구석에서 잠을 재우고 있습니다. 남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말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간도 말해줍니다. 촉박함은 실수를 불러오기가 쉽습니다. 시간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로움이 필요합니다. 사고의 대부분은 집중력의 부족도 있지만 서두름이 실수를 불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아들의 차를 함께 탈 때면 종종 차분히 운전하기를 요구합니다. 나의 침착함이 나의 안전과 남의 안전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이번의 그림책 자서전 만들기 기간도 촉박합니다. 팔 회의 수강으로 완성한다고 합니다. 나는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처음 접하는 수강생이 대부분입니다. 모두가 원하는 만큼의 작품이 완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시작한 그림책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 복안대로 밀고 나가야겠습니다. 실패를 남에게 전가하기보다는 적은 습득이지만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진일보된 책을 손에 들 것이라고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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