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음식 이야기 20220912
추석날 떡국을 먹었습니다. 소설에 나올만한 이야기라고 해도 될까. 남들이 안다면 웃긴다거나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는 올 설날 떡국을 먹지 않아서 자신의 나이를 채울 생각이었을까. 그것도 아닙니다. 올해뿐만 아니라 아내와 결혼을 한 후로는 시도 때도 없이 먹습니다. 나는 가끔 농담합니다.
“올해는 내가 몇 살을 더 먹은 거야.”
아내는 떡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내의 식성을 따라갑니다. 결혼 전에는 어머니의 식성에 길들었지만 결혼 후에는 바뀔 수 있습니다. 내가 직접 식사를 전담하면 몰라도 우리 나이에는 정서상 음식을 조리하는 것은 대부분 아내의 몫입니다. 오로지 밥과 국, 김치를 좋아하던 내가 식단의 변화에 알게 모르게 적응하는 사이 아내의 입맛에 길들었습니다. 요즈음은 주로 아침 식탁에 빵이 오르고 있습니다. 떡국이 나오기도 하고 떡이 대신하기도 합니다. 내가 어쩌다 투정이라도 할라치면 아내는 건강을 위해서는 편식이 금물이라는 당연한 말로 뒷마금 합니다.
해마다 추석에는 송편이 빠지지 않았는데 이를 어쩌나, 올해는 추석 연휴가 끝났는데도 송편은 구경도 못 했습니다. 외국에라도 가 있는 느낌입니다.
“송편도 떡인데…….”
“안 먹으면 안 되나요?”
침묵으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왠지 낯선 느낌이 듭니다.
갑자기 노르웨이에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팔월 초의 여행이었는데 협곡(피오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눈보라가 시야를 가렸습니다. 옷깃을 여몄습니다. 우산을 썼으나 바람이 요동치자, 살이 꺾기고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전경을 둘러보는 일을 잠시 뒤로 미루고 차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나에게는 그 겨울을 미리 당겨 첫눈을 맞이한 셈입니다. 아내가 보온병을 열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만약을 위해 여분으로 준비했답니다. 따듯한 커피 향이 코를 간질입니다. 컵이 입 가까이 다가가자 따스한 김이 얼굴에 번집니다. ‘후우’ 한 모금 마십니다. 버스의 창문이 흐려졌는데 안경마저 흐려집니다. 여름에 뜨거운 커피가 이렇게 좋게 다가온 것은 처음입니다. 시월에 떡국 팔월에 뜨거운 커피, 상황은 서로 달라도 뭔가 낯설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월이 변함에 따라 우리의 식생활도 점차 변해왔고 변해갑니다. 내가 유년기의 시절에는 삼시세끼 밥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귀한 쌀밥을 비롯하여 보리밥, 잡곡밥 등 밥이 위주였습니다. 보릿고개에는 죽으로 대신하기도 했지만, 밀가루는 귀했습니다. 시골에서 빵을 먹는다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했고 밀가루를 이용하여 국수나 전을 만들어 먹었는데 밥에 비해 흔하지 않은 음식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농업에 밀 농사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보리와 밀의 경작이 같은 시기에 이루어지지만, 밀은 보리에 비해 생각만큼 소출이 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밀보다는 보리를 더 많이 경작했습니다. 밀가루도 귀했지만, 쌀은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설 명절 때가 아니면 떡국을 구경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무렵이면 흰 떡가래를 구워 먹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떠합니까. 떡국이 질리지 않는다면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습니다. 옛날과는 달리 쌀이 모자라지 않고 남아도니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가래떡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은 다양한 방법으로 가래떡을 활용합니다. 국을 끓이기도 하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구워 먹기도 하며 식사 대용으로 여러 식재료를 섞어 조리하여 먹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번 추석 아침에 떡국을 먹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고 보니 생소하다는 생각과 함께 특이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세상이 늘 같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게 변화하는데 음식문화라고 해서 변화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냉면을 제대로 먹고 싶다면 겨울에 먹으라는 말을 했습니다. 펄펄 끓는 방에서 찬 음식을 먹는 묘미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고 합니다. 원래 냉면은 겨울에 먹는 거라고 했는데 확인해 보지 않았으니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조리사 몇 명이 시골의 할머니들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슨 음식을 대접할까 하는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잠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늘 먹는 한식을 정갈하게 마련할까, 아니면 새로운 서구 음식을 대접해 볼까. 결론은 서양 음식으로 정해졌습니다. 노인들이 혹시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마련한 점심은 대성공입니다. 아흔이 가까워져 오거나 이를 넘긴 노인들은 새로운 음식에 만족했습니다. 제공한 음식량이 많다고 하면서도 끝내 그릇을 깨끗이 비웠습니다. 처음 보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한 분은 맛있어 죽겠다며 배식하고 남은 음식 보고 보자기를 펼쳤습니다. 옆에 앉은 할머니가 요리사에게 귀엣말했습니다.
“저 할망구, 영감님이 생각나서 그래요.”
식사를 끝낸 노인들의 엄지손가락이 연신 요리사를 향했습니다. 얼굴에 미소가 범벅인 채 카메라를 응시했습니다. 국 대신 수프, 빵으로 만든 그릇에 담은 파스타, 멜론의 용기에 가득 채운 빙수는 어른들의 눈, 코, 입을 즐겁게 했습니다. 처음 보는 음식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