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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74. 정말 익어가는 겁니까. 20221006

by 지금은

노래를 듣는 순간 갑자기 목이 울컥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꾹 참았습니다. 노사연이 부른 노래 ‘바람’의 가사 내용 때문입니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나는 가사의 내용도 그러하려니와 멜로디가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노사연의 노래이지만 ‘김은경’이라는 우리 고장에 사는 가수가 송도노인복지관 시니어 노래자랑 경연대회에 초청되어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나는 노사연의 허스키한 목소리보다 초청 가수의 고운 음색이 더 가슴에 와닿습니다.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레 울려 나오는 맑고 조용한 음조는 내 심금을 울렸습니다. 나는 노래를 듣고 슬픔을 느끼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감정이 부족한 때문인지 모릅니다.


목석같은 내가 이유도 없이 갑자기 슬퍼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집으로 오는 동안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제 길에서 넘어진 사건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계단을 다 내려가 마지막으로 땅을 딛는 순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방심인가요. 여하튼 발이 미끄러지면서부터 넘어지는 순간까지 인식을 하면서도 균형을 잡기 위한 어떤 동작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넘어졌구나.’


몸을 일으켰을 때는 그저 정신이 어리벙벙했습니다.


방심을 했는지 미끄러졌습니다. 넘어지는 순간까지 넘어질 거라는 인식을 하면서도 균형을 잡기 위한 어떤 동작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넘어졌구나!’


몸을 일으켰을 때는 그저 정신이 어리벙벙했습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는데 갑자기 울적해졌습니다. 그 이유가 넘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살아온 과정 중 마음을 흔들었던 고난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고 지금은 신체의 변화가 큰 몫을 했습니다.


나는 늙어가는 겁니까. 요즘 목욕 후 거울을 보면 내 몸이 쪼그라들고 주름이 점차 많아지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어느 순간 없던 현상들이 생겨납니다. 이를 이겨보려고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고 손을 가져다 피부를 문질러보기도 합니다. 놓았던 아령을 다시 들었습니다. 꾸준히 걷고 공원에 있는 운동기구에도 매달려봅니다.

아내도 두 달 전부터 아령을 들었습니다. 주름과 늘어지는 몸매가 맘에 들지 않는답니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에어로빅 흉내도 냅니다. 우리는 함께 젊음을 잃어가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늙어가기보다는 익어가는 겁니다.’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구절은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스스로 위로를 해봐도 고개가 저어집니다.

요즘은 점점 순발력이 늦어지고 보행의 속도 또한 늦어집니다. 제비만큼은 아니어도 빨리빨리 하던 내가 마음도 행동도 굼뜹니다. 더구나 주변의 물체에 몸을 부딪치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서있는 물체를 비켜가려고 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접촉되고 맙니다.


넘어진 후 집에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아내는 이내 알아차리고 말았습니다. 내 불편해하는 동작을 보고 물었습니다.


“어디 아파요.”


“길에서 넘어졌어요.”


약과 밴드를 가져와 상처부위를 감쌌습니다.


몸이 하나둘씩 약해지고 고장이 납니다. 이가, 눈이, 귀가 수월하게 작동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혈압이, 당뇨가……. 병원에 다니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복용해야 할 약도 보태졌습니다. 의사는 운동, 음식 조절, 스트레스 방지를 주문합니다. 아프지 않고 오래 살고 싶은 생각에 적절한 한계까지 몸무게를 줄였습니다. 종종 배불리 먹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맛있는 것을 양껏 먹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늙어가면서 에너지를 소비하는 양이 줄어든답니다. 적게 먹는 것이 좋다는 말이 떠올라 절제하는 편입니다. 조금이라도 덜 아파야 한다는 생각에 바람직한 생활태도를 지켜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나는 무조건 젊음만을 강조하기보다 나이에 맞는 건강을 생각합니다. 육십 대의 건강, 칠십 대의 건강,…… 백세 나이에 지켜야 할 건강이 있다면 그것을 지켜보려고 합니다.


나는 몸의 건강과 정신 건강의 조화를 위해 노력 중입니다. 요즈음 가정과 사회에서 치매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하게 논의됩니다. 개인은 물론 국가에서도 치매 예방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머리를 활성화시킬수록 치매의 속도를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나이에 배워서 뭐 하게.”


이런 말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나는 아닙니다.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뭐를 하기 위한다기 보다 내 스스로의 교양을 쌓는다는 기분으로 부지런히 배움터를 찾아다닙니다. 물론 치매 예방의 효과도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배우는 가운데 기능이나 지식을 습득하고 남과 서로 어울리며 부족한 삶의 지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외로움도 잊을 수 있습니다.


노래자랑을 구경하다 보니 뜻하지 않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말 그대로 행운에 당첨되었습니다. 방청객을 대상으로 행운권 추첨이 있었는데 나는 맨 마지막으로 손에 쥐었습니다. 사회자가 행운 중에 최고라며 부른 번호는 77번입니다. 바로 내가 주인공입니다. 상품의 질과 값을 따지기에는 비록 작은 물건이지만 당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방청객의 시선이 부러움에 가득 찼습니다.


‘집에 휴지가 떨어졌는데 마침 잘 됐네요.’


아픈 몸 때문에 한 순간 울적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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