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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73. 제기 20221006

by 지금은

오랜만에 제기를 만들었습니다. 차보았습니다. 얼마인지 모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초등학교 때 이후로는 흐름이 끊깁니다. 퇴직 전까지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몇 번씩 차본 일은 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옆을 지나가다 담장 너머로 떨어진 제기를 주워 온 일이 있습니다. 집에 와서 차보았지만 내 실력과는 거리가 멉니다. 제기 자체가 내 몸에 익숙하지 않은 때문입니다. 재료부터 다릅니다. 주워 온 제기의 재료는 플라스틱과 구멍이 없는 둥글납작한 쇠붙이, 비닐입니다. 모양이 좋아 보이고 소리가 나게끔 작고 앙증맞은 방울을 하나 달아 놓았습니다. 제기가 날렵하지 않고 퉁퉁하지만 가볍다는 느낌이 듭니다. 차올렸을 때 내가 원하는 높이에 이르지 못합니다. 밑바닥이 쉬이 달지 말라고 병마개 모양의 플라스틱을 끼워 발에 닿는 부분이 넓습니다. 균형을 잡을 수 있게 차올리기가 어렵습니다. 몇 번 차보다가 제기가 높이 오르도록 술의 일부분을 잘랐습니다. 조금 나아진 느낌입니다. 신발에 닿는 제기의 밑 부분도 달리 해보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새것이나 진배없으니 버리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원하는 아이에게 놀잇감으로 줄 생각에 한 곳에 두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제기를 잘 차는 축에 속했습니다. 반에서 우승을 한 일은 없지만 몇 손가락에 들 정도였습니다. 어쩌다 고궁에 갔을 때는 옛날의 실력을 무기 삼아 투호, 고리 던지기, 굴렁쇠 굴리기, 제기차기 등을 해봅니다. 늘 만만 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생각 같지 않습니다. 도구들이 내 손과 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쉬워 보이는 것은 굴렁쇠입니다. 아직도 남들이 눈여겨볼 정도로 잘 굴립니다. 대회가 있다면 우승이라도 할 기분입니다.


시니어들을 위한 프로그램 중 옛날의 경험을 되살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주로 놀이에 관한 것입니다. 윷놀이, 딱지치기, 비사치기, 제기차기 등입니다. 내가 자신 있어하는 굴렁쇠 굴리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장소가 협소하다 보니 없습니다. 모두 원하는 것을 말했지만 다수에 의해 제기를 만들어 차보기로 했습니다. 강사는 문방구에서 파는 제기와는 다른 재료를 말했습니다. 환경보호 차원에서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제외하고 옛날 방식의 제기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제공한 준비물은 와셔와 창호지입니다. 만드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내 머리에는 이미 입력이 되어있습니다. 설명이 끝나기 전에 이미 완성했습니다. 강사가 내 모습을 눈여겨보았나 봅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다가와 말했습니다.


“제 마음을 어떻게 읽으셨어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뭐, 어려서 많이 해본 일이라…….”


강사가 설명한 대로 했지만 끝맺음이 하나 달랐습니다. 그는 술을 하나씩 끝부분까지 가늘게 꼬아야 했지만 나는 밑 부분만 꼬았습니다. 내 제기의 모양이 좋아 보입니다. 균형도 잘 잡혔습니다. 제기차기의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대여섯 번에 머물렀는데 나는 연습도 없이 스무 번을 넘겼습니다. 강사를 비롯한 수강생들이 환호와 함께 손뼉을 쳐주었습니다.


어려서 만든 내 제기의 재료는 오늘의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와셔대신에 옛날 엽전입니다. 구멍이 네모모양입니다. 동전의 이름은 상평통보 또는 조선통보입니다. 그 여러 개의 동전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지금까지 간직할 수 있었다면 가치 있고 귀한 물건임에 틀림없습니다. 동그란 구멍이 있는 와셔보다 네모난 구멍이 있는 엽전이 더 좋습니다. 재기의 날개를 끼웠을 때 바닥이 평평하고 모양도 더 예쁩니다. 발에 닿는 면적도 고르게 힘을 받습니다. 오늘 사용한 창호지는 색과 무늬가 있습니다. 내가 예전에 사용한 것은 흰색입니다. 문에 쓸 창호지라서 잘라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강사는 내가 만든 제기가 맘에 드는 모양입니다. 참고하겠다며 줄 수 없느냐고 합니다. 흔쾌히 건넸습니다. 고맙다며 창호지를 석 장이나 주었습니다.


수강생들은 각자 자신이 만든 제기를 가방에 넣었습니다. 손자 손녀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흐뭇한 표정입니다. 처음 만들어 보았다는 사람도 있고 만들어 본 지가 언제냐며 추억담을 다시 이어갑니다. 나는 준비물을 챙깁니다. 하지만 마땅히 만들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집에는 꼬마가 없습니다. 자주 마주치는 옆집의 아이는 너무 어립니다. 그래도 마음에 맞는 하나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발 운동도 할 겸 제기 실력도 찾아야겠습니다. 플라스틱 제기로는 제 실력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내가 말하겠지요.


“애들도 아니고 뭐 하는 거예요.”


거실에서 제기를 차다 보면 먼지를 일으킨다고 핀잔을 들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아이들과 어울려 아이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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