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대답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20221027
도서관 문이 열리려면 이십여 분이 남았습니다. 나는 지금 복지관 일 층 휴게실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옆자리에 한 무리의 여자들이 왁자지껄하고 있습니다. 원탁 테이블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았습니다. 조금 시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입니다. 복지관 직원 한 분이 내 옆을 스치듯 지나 그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내 눈이 자연적으로 그들을 향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음료수나 음식을 드시면 안 됩니다. 코로나로 인해 물 이외에는 드실 수 없습니다. 물도 개별적으로 드셔야 합니다.”
한 여자가 그를 빤히 올려다봅니다.
“정부의 시책이 그렇고, 누군가 민원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예, 뜨개질을 배우는 시간에는 괜찮겠지요?”
“마찬가지로 안 됩니다.”
“예.”
담당자가 돌아가자 먹던 것을 가방에 넣었던 것들을 주섬주섬 다시 내놓습니다. 칼이 나왔습니다. 사과가 나왔습니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이람. 식사하지 않고 나왔나?’
사과가 쪼개지고 손들이 왔다 갔다 합니다. 입으로 들어갑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실내가 울리도록 잡담합니다.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합니다. 이를 본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뜹니다. 나도 다 읽지 못한 칼럼을 마저 읽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보온병에서 커피가 그들의 손에 쏟아집니다.
아침에 함께 셔틀버스를 탔습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늘 다정해 보입니다. 차에서부터 실내는 소란스럽습니다. 그들만이 사용하는 공간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중에 한 명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배움을 함께 했습니다. 말을 나누지는 않았어도 열의가 있어 보입니다. 질문을 많이 하고 강사와 교감을 나누었습니다. 좋게 보았는데…….
나는 점심식사가 끝나면 잠시 이층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이들도 이곳을 자주 이용합니다. 나는 가끔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입니다. 한 여자의 말씨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재치 있는 농담을 잘합니다.
셔틀버스 안에서의 일입니다. 그들 중 누구의 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이 여자의 말만 귓속을 파고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다 다리 밑에서 데려온 거야, 그러기에 다리 밑을 지나가고, 다리 사이에 공을 놓고 치지. 골프가 그렇고 게이트볼도 그렇지. 다리 사이도 지나가지 안 남.”
한 여자가 추임새를 넣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일이지. 나를 엄마가 낳은 게 아니라 동구 밖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삼촌의 말에 울고불고 집을 뛰쳐나갔던 일이 있었지.”
“맞아, 그러게, 우리는 모두가 다리 밑에서 온 사람들이 아닌감.”
며칠 전에 보았을 때도 이들은 휴게실에서 싸 온 음식들을 넓은 탁자에 풀어놓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방에서 나온 음식들이 모이니 그럴듯한 상이 차려졌습니다. 경쟁이라도 하듯 내놓은 음식은 그들의 옷차림만큼이나 화려했습니다. 냄새와 시끄러움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완전히 그들만의 세상입니다.
보다 못한 한 사람이 탁자에 물건을 챙길 때 조용히 다가갔습니다.
“미안하지만 남들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들은 힐끗 둘러보았습니다. 주위의 사람들과 눈이 마주칩니다. 고개가 돌아갔습니다.
“예, 알겠어요.”
상냥한 대답과는 달리 그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시끄러운 말소리 그대로입니다. 버려져야 할 것들이 옆의 쓰레기통으로 옮겨갑니다.
내가 강의실로 가기 위해 일어서는 순간 함께 교육받는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안녕하세요. 시간이 됐네요.”
나는 그저 목례로 답했습니다. 좋았던 인상이 마구 흐려지는 순간입니다. 그 여자를 앞질러 강의실로 향했습니다. 대답만이 능사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