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넋두리 20221026
고릿적 나무들이 살아가던 이야기입니다. 산기슭에 몇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뽕나무, 대나무, 참나무, 화살나무, 국수나무 등입니다.
하루는 뽕나무가 참나무에 귓속말했습니다.
“어쩌지, 어쩌지.”
이를 알아챈 참나무가 말했습니다.
“참아라, 참아라.”
“뽕 뽀옹.”
“댓기놈.”
대나무가 이들을 내려다보며 호통을 쳤습니다.
이를 본 화살나무가 줄행랑을 쳤습니다.
막 끓었는데 국수나 먹고 가지 하고 국수나무가 말했습니다. 바람 나무(버드나무의 방언)가 알았다는 듯 일렁일렁 몸을 흔들었습니다.
내가 어릴 때의 겨울입니다. 우리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입니다. 늦은 밤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면 뜸을 들이다가 내 엉덩이를 몇 번 두드리고는 방귀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습니다.
“이제 밤도 깊었는데 그만 자야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늘 짧았습니다. 대기놈까지가 끝입니다. 뒷부분은 내가 지금 지어낸 말입니다. 아이들은 지금도 방귀나 똥 이야기가 나오면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듣습니다. 더럽다고 하면서도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누구나 흔히 겪는 일상의 생리작용이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더럽다거나 불쾌하다거나 하면서도 내 곁에서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도서관에서 어린이책들을 살펴보던 중 방귀와 똥, 오줌에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 있는 책이 가끔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옛날이야기를 잘 모르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지는 몰라도 방귀 이야기 외에는 내 기억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지는 거야.”
그렇다고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우리 집이 부자는 못 됐습니다.
‘댓기놈.’
나무라는 말인 것 같지만 정확한 뜻을 몰라 국어사전을 들췄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인터넷 사전에서 살펴보았지만 ‘찾을 수 없음’이란 문자가 뜹니다. 나중에 생각한 것이지만 이야기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다 보니 사전에 없는 말을 지어낸 것 같습니다. 더구나 뽕나무 이야기가 만들어질 때는 사전이 존재하지 않았으리라고 짐작이 됩니다.
뽕나무가 제일 어린가 봅니다. 예의도 있어 보입니다. 참다못해 뽕했으니 말입니다. 참나무는 우정이 깊은지 아니면 어머니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예의가 없다고 어른에게 핀잔을 들을 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나무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들 중에 호통을 친 것은 대나무입니다. 눈치 빠른 화살나무도 있습니다. 외국의 빵나무만큼이나 국수나무는 마음이 넉넉합니다. 바람 나무는 여유가 있습니다. 설렁설렁 몸을 흔들어 공기를 정화합니다. 국수나무만큼 남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우리는 지지고 볶고 삶고 끓이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 활동이 좋을 때도 있고 때로는 짜증이 나는 때도 있습니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에서 끝맺음은 늘 댓기놈입니다. 늦은 밤 졸라대는 손자에게 혼을 낼 수는 없으니, 나무의 이야기를 빌려왔는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할머니가 지어낸 것은 아닙니다. 내 어린 시절 동네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습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입니다. 담임선생님이 교실을 비우는 날이면 다른 선생님이 우리를 맡아 지도하셨습니다. 장기 자랑을 시킬 때가 많았습니다. 재주가 없는 나는 그래도 만만한 게 옛날이야기입니다. 차례로 칠판 앞에 서야 하니 어쩌겠습니까.
“옛날 옛적에 참나무와 뽕나무가…….”
“야, 그만둬, 다 아는 거야.”
“그럼, 달걀귀신 아니면 똥 장군 이야기할까.”
“다른 거를 해야지.”
친구들의 야유 속에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아 교실 천장만 바라봅니다. 내 짧은 침묵이지만 마음만은 긴 시간입니다. 머릿속이 꼼지락거립니다.
“들어가.”
선생님이 손짓했습니다. 살았습니다.
어제는 배움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모임이 있었습니다. 연장자라고 반원을 대표해서 인사를 하라고 합니다. 생각지도 않은 제의에 입이 콱 막혔습니다. 배우는 동안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내게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함께한 사람들과 말을 많이 나눈 것도 아닙니다. 뽕나무, 달걀귀신, 똥 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