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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101. 산다는 것 20221107

by 지금은

‘산다는 것에 무엇인가?’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요 며칠 사이에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삶이 갑자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왜, 사나?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


생각의 꼬투리가 보이는 듯했습니다.


건강의 적신호가 일주일 전부터 보였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게 문제입니다.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자 몸이 반응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방 안에 있어도 춥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이 건조하다는 생각에 물을 한 컵 마셨습니다. 보통 때와는 달리 느끼지 못한 맛입니다. 씁니다.


살다 보면 남을 의식하지 않을 때도 있어야 합니다. 거울을 보고 입었던 옷을 벗었습니다. 두꺼운 겨울 복장이란 생각입니다. 어제 입었던 옷보다 조금 두꺼운 것으로 바꿨습니다. 바깥바람이 서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자고 나면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콧물이 납니다. 밖에서는 온기를 가둘 목적으로 마스크를 벗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 마스크를 내리고 휴지로 콧물을 훔쳤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게 문제였나 봅니다. 삼사일이 지나자 갑자기 목구멍에 이상이 느껴졌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뭔가 걸리는 느낌입니다. 갈증을 느껴 새벽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물을 한 컵 마시는데 목이 뜨끔합니다. 침을 삼키는데도 같은 현상입니다. 코 막힘도 문제입니다. 건조해서 그럴 것 같은 생각에 분무기로 방안에 물을 뿌렸습니다. 가는 물방울이 허공에 퍼지자, 얼굴에 찬 느낌이 다가옵니다.


‘아플 때는 휴식이 최고라는데.’


일반적인 상식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 이게 문제일까. 그러고 보니 낮잠도 잤습니다. 낮잠도 한몫했나 봅니다. 오늘 밤은 잔 게 아니라 비몽사몽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아침이 되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밤에 깨서 뭐 한 거예요.”


나는 안 하던 짓을 했습니다. 아내가 잠에서 깰까 봐 살며시 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갑자기 더워진 몸을 식히고 싶어 거실 바닥에 베개를 놓았습니다. 잠들고 깨기를 다섯 번이나 했습니다. 잠자리가 불편합니다. 화장실도 다섯 번이나 들락거렸습니다. 왜 그렇게 오줌이 마려운지 모르겠습니다. 물을 두어 번 마셨지만, 양은 많지 않습니다. 갈증에 목을 추길 정도입니다. 온몸이 저리고 아픕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상태가 계속 안 좋을 것만 같습니다.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시계를 보니 두 시경입니다. 보안등이 켜진 아파트의 중앙 통로를 걸었습니다. 시계추처럼 반복했습니다. 집으로 들어왔지만, 또다시 선잠에서 깨었습니다. 몸을 뒤척이다가 재차 일어났습니다. 밖으로 나와 같은 짓을 반복했습니다.


아내는 의아해하는 눈치입니다. 잠이 안 와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그럴 경우 아내는 내 습관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불을 밝힌 채 작은방 컴퓨터 앞에 앉아있습니다. 주로 하는 일은 글쓰기입니다. 시작보다는 끝을 맺지 못한 부분을 마무리합니다. 귀가 밝은 아내는 알게 모르게 열린 방문 틈으로 나를 들여다봅니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말합니다.


“잠자다가 뭐 하는 짓이래요.”


내가 하는 일을 보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니 피곤이 몰려옵니다. 잠자리에 들까 하다가 따스한 옷을 챙겨 입었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자연인의 삶이 종종 소개됩니다. 그들은 신체나 정신적 고통으로 산속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끊임없는 육체적 활동이 이루어집니다. 프로그램상 건강한 삶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살아온 삶은 구구 각색이지만 얼굴에는 하나같이 만족한 표정이 보입니다. 가진 게 변변하지 못해도 자신의 생활에 만족해합니다. 건강을 찾았다는 기쁨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돈을 잃고 건강도 잃었는데 하나라도 찾았으니 다행한 일입니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몸과 마음이 아팠던 경우는 참 많았지만 유년 시절을 빼고는 입맛이 없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번의 경우는 유별나게 입맛이 없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모든 음식이 쓰게만 느껴집니다. 어른들이 소태같이 쓰다고 말하곤 하셨는데 지금 내 입맛의 경우가 이에 속한다고 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소태.’


소태나무의 껍질을 이르는 말입니다. 좀 더 뜻을 자세히 알고 싶어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소태나뭇과 속하는 낙엽 활엽 소교목 가지에 털이 없고 나무껍질은 적갈색이며 황색의 피목(皮目)이 있다. 열매와 나뭇진은 쓴맛으로 위약, 살충제 따위로 쓴다.


나는 정작 소태나무를 보지 못했고 맛의 정도를 가늠하지 못합니다. 씀바귀, 익모초, 라일락 잎의 맛은 보았습니다. 라일락 잎의 맛은 정말 씁니다. 쓰디쓴 맛의 여운이 오래갑니다. 어릴 때 동네 어른들의 쓴맛을 소태에 비유하곤 했으니 이 정도는 될 거라고 하고 가늠해 봅니다. 하지만 쓴맛의 대가는 고삼입니다. 처음에는 별로 쓰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맛의 강도를 더해갑니다. 서너 시간에 절정을 이룹니다.


갑자기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해 동안 마스크 착용이 습관화되었는데 감기에 걸리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쓴맛은 쓴맛으로 잡겠다는 오기가 생겼는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전철역에서 차를 기다리는 순간 자판기 옆에서 커피믹스를 마시는 사람이 눈에 뜨입니다. 당뇨를 걱정하는 내가 그의 얼굴에서 행복을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절로 발길이 자판기 앞으로 향했습니다. 건강에 좋지 않다고 믿던 나에게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잔, 두 잔.’


따듯함에 목이 부드러워지는 느낌입니다. 뒤 끝이 좋지 않다며 블랙커피를 강조하던 나입니다. 건강이 회복되려나 봅니다. 소태의 맛이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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