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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102. 자전거 20221107

by 지금은

동그마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유기견(遺棄犬)처럼 말입니다. 벌써 사 년째입니다. 내년 삼월이면 오 년이 됩니다. 유기 자전거는 처음 주인이 유기견을 사랑했을 때의 모습처럼 햇볕에 윤이 나고 반짝였습니다.


어느 날 오후입니다. 내가 공원의 산책을 마치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몇 발짝 떨어진 이팝나무 기둥에 자전거의 허리가 매여있습니다. 내 키에 어울리게 안장이 낮고 차대가 갸름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지녔습니다. 내 자전거와 바꿨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렇다고 내 자전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애지중지하는 것이지만 세월이 지나다 보니 차대가 높고 투박해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체력이나 균형 감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증거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야.’


새 자전거는 몇 달이 지나도록 그 자리의 자물쇠에 묶인 채 횡단보도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 사이 꽃이 피고 나뭇잎이 만개하고 단풍이 들었습니다. 햇볕이 찾아오고 바람이 지나가고 비가 내리고 때로는 흙먼지가 자전거를 덮기도 합니다.


‘누군가 찾아가겠지.’


생각하는 동안 눈이 내리고 다시 봄이 왔습니다. 아직도 자전거는 새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봄비가 내리자, 목욕이라도 한 듯 다시 윤기가 흐릅니다. 겨울을 잘 견뎠습니다. 자전거는 신호등을 주시하며 그렇게 또 사계절을 넘겼습니다.


“여보 저기 좀 봐. 삼 년이 지났는데도 그 자리야. 유기견이 따로 없어요.”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에 이팝나무에 묶여있는 자전거를 가리켰습니다. 아내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입니다.


“혹시라도 탐내지 말아요.”


내 의도와는 달리 동문서답입니다.


요즈음은 유기견 못지않게 자전거도 문제입니다. 길거리의 자전거 보관대나 아파트의 자전거 보관 장소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자전거들이 많습니다. 개중에는 몸체가 녹슬고 낡아서, 또는 바퀴나 브레이크, 페달에 문제가 생겨 자물쇠에 묶인 채 몇 년씩이나 제자리에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있습니다. 나를, 나를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요 하는 마음으로 주인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어느 경우에는 이팝나무에 묶인 자전거처럼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인의 맘에 들지 않았는지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몰골이 깨끗하던 자전거는 해가 지날수록 흉물로 변해갑니다. 자전거는 늘어나고 장소는 비좁습니다.


가을 무렵입니다. 태풍이 우리나라의 남해안에 큰 피해를 줬을 때 우리 고장에도 바람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피해가 없다고는 해도 바람이 비를 몰아와 건물의 외벽이 없는 곳은 물탕을 만들었습니다. 비바람이 그친 후 공원의 둘레 길을 돌아 나오는 데 있어야 할 자전거가 보이지 않습니다.


‘드디어 주인이 찾아간 게야.’


횡단보도에 접근했을 때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다 힘에 부쳤나 봅니다. 바퀴를 바닥에 누인 채 모로 쓰러져 있습니다. 몇 발짝 가까이 다가가자, 몰골이 흉한 모습입니다. 신수가 훤하던 때와는 달리 차체의 여기저기 녹이 슬었습니다. 반짝이며 광을 내던 부분이 더 빛을 잃었습니다.


며칠 후 다시 보았을 때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처음처럼 이팝나무에 몸을 기댄 채 횡단보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누군가 일으켜 세워준 게 분명합니다. 아직도 달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지 바퀴는 탱탱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젊음은 잃은 게 분명합니다. 퇴색되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주인에 대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무슨 사정이 있는 게 분명해.’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은 아닌지, 몹쓸 병을 얻은 것은 아니겠지, 더구나 죽지는 않았을 거야 하고 생각하기 싫은 망상에 빠졌습니다.


이런 자전거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나는 자전거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늘 닦고 조이고 기름칠했습니다. 늘 새거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자전거를 두 번이나 잃어버린 일이 있습니다. 전철역에서 한 번, 집 앞에서 한 번입니다. 자전거가 귀하던 시절 자물쇠를 채웠어도 소의 고삐를 끊듯 누군가 데려갔습니다.


지금 내 발걸음이 되는 자전거는 십오 년째입니다. 반들반들 윤이 납니다. 나는 이곳저곳에 버려진 것이나 버려진 것과 다름없는 자전거를 보면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타기 싫다면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쪽지를 남기면 어떨까 합니다. 사용하지 않아서, 관리하지 않아서 녹슬고 망가진 자전거들이 많습니다. 유행을 지난 자전거이지만 기능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소모품 한두 개만 갈면 되는 것도 많습니다.


“필요한 분 가져가세요.”


유기견만 불쌍한 게 아닙니다. 자전거도 불쌍합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것으로만 말한다면 자전거가 더 많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새 주인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풍요가 나를 슬프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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