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수능 보는 날 20221117
드디어 수학능력 고사와 대학입시 철이 다가왔습니다. 올해의 수학능력 고사 일은 내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몇 시간 남지 않았습니다. 수험생과 학부모 모두 예민한 시기입니다. 시험에 부정적 영향을 줄까 봐 조심하는 징크스도 있습니다. 나의 경우 시험을 앞두고선 미역국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손톱도 깎지 않았습니다. 내가 뭘 알고 있다기보다 어른들의 말씀이 귀에 닿았기 때문입니다. 옛날 과거 시험을 앞둔 선비들도 삼가는 것들이 있었나 봅니다. 낙방이 연상되는 ‘떨어질 락(落)’은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시험에 떨어질까 봐 두려운 마음에 피하는 길도 있었답니다. 경상도에서 서울로 가는 고갯길에는 추풍령과 죽령이 있었습니다. 과객(科客)은 이 길을 꺼렸습니다. 죽령은 주르르 미끄러진다 하고 추풍령은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진다고 하여 피했습니다. 대신 문경새재인 조령(鳥嶺)을 과객(科客)이 선호했는데, 한양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문경(聞慶)이란 지명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 곳’이고, 고려 시대엔 ‘기쁜 소식을 듣는 문희(聞喜)’라 불렸기 때문입니다. 그 기운을 받으러 호남의 과객 중에도 문경을 찾는 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험난한 고갯길이었기에 넘나들기에 힘들었지만, 이 길을 통해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많았나 봅니다. 나도 젊었을 때 관광목적으로 이 길을 넘은 일이 있습니다. 새들도 쉬어 넘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나는 수능을 두 번 보았습니다. 한 번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였고, 다음 해 또다시 도전했습니다. 처음에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직장과 학업을 병행할 수가 없어 학업을 포기했습니다.
막상 입학하고 보니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원하는 학과에 입학하여 학업에만 열중하려고 또 한 번의 수능을 치렀습니다. 무난히 합격했습니다. 지금이나 나 때나 대학수학능력고사란 말은 같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시험을 치를 때는 대학에 시험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일정 점수에 도달하면 합격입니다. 지금은 점수의 서열이 있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높은 점수가 필요합니다. 나의 경우는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어도 대학 시험에서 점수를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수능이나 대학 시험을 볼 때면 준비해 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부적입니다. 용하다는 스님의 부적을 얻어 몸에 지니게 했습니다. 분실될까 봐 옷 속 어디엔가 감추듯 넣고 봉했습니다. 고등학교 시험을 볼 때는 배냇저고리가 좋다고 어디서 구하셨는지 내 몸에 지니게 한 일도 있습니다. 나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자녀의 합격을 위해 다양한 방도를 썼습니다. 영험하다는 곳에 가서 백일기도를 한다든가 시험 보는 날 교문에 엿을 붙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높은 점수를 얻거나 합격을 기원하는 친지들의 선물도 있습니다. 답을 콕 집으라고 포크와 찹쌀떡을 주었습니다. 딱풀이나 엿도 있습니다.
올해는 수학능력 고사 일에 춥다는 예보는 없습니다. 다행입니다. 전에는 웬일인지 이때만 되면 한파가 몰아쳤습니다. 하늘이 연례행사를 알기나 하듯 찬바람을 몰아왔습니다. 가뜩이나 긴장한 상태에서 덜덜 떨리는 몸으로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부모님의 마음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은 물론 온 집안 식구들이 수학능력 고사에 목숨을 건듯합니다. 원하는 대학을 입학하느냐 못하느냐가 일생을 좌우하는 지름길인 양 모두 마음이 곤두섰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험이 끝나고 나면 개중에 몇몇 학생들은 인생을 포기하는 일까지 발생합니다. 올해는 제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의 시험 실패가 인생을 꼭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의 하나일 뿐입니다.
나도 시험의 실패로 시련을 겪은 일이 있습니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입학시험에 실패했습니다. 그때의 심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느낌입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하느님은 왜 나에게만 시련을 안겨주신 것인지 당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이해가 됩니다. 나만 시험에 낙방한 것은 아닙니다. 경쟁이 심하니 많은 사람이 떨어졌습니다. 합격생들은 보이고 단지 그들이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내가 누구보다 노력했다고 자부하지만 실은 더 열심히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만 그들의 노력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학수학능력시험에는 모두가 좋은 점수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보면 낮은 점수라고 실망할 필요도 없고 좋은 점수를 얻었다고 마음이 들뜰 필요도 없습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끝까지 살아보아야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종착역은 아직 멀었으니, 일희일비에 빠져들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는 삶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