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뭐 특별한 글감 20221117
어제부터 글감 찾기에 골몰했습니다. 평소보다 더 집중했습니다. 길을 걷는 동안에도 여기저기 둘러봅니다. 가을의 막바지에 날리는 낙엽, 떨어지지 않으려고 비와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안간힘을 쓰는 몇 개 남지 않은 나뭇잎이 눈에 들어옵니다. 햇볕에 그을리고 바람에 바래버린 몸을 겨우겨우 지탱합니다. 곱고 아름다움을 많이 상실했습니다.
하늘을 올려봅니다. 비가 몰고 왔던 먹장구름이 물러가고 옅은 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살을 쏟아냅니다. 아침 일찍 벌어진 문틈으로 찾아온 햇살이 길게 방바닥에 줄을 긋듯 소나무 사이를 비집고 바닥에 낚싯줄을 드리웠습니다. 솔방울이라도 잡아챌 것 같습니다.
차를 타고 가며 차창 밖을 살핍니다. 요즘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새로운 풍경에 빠졌습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휴대전화를 켭니다. 뭐 특이한 것이라도 놓칠세라 배터리가 소모되는 것은 대수도 아닙니다. 신호등 앞에서 차가 멈췄습니다.
‘뭐야! 먼’
사오 초 머무는 사이에 생각지 못했던 이정표를 읽었습니다. 버스 지붕에 일정 부분 가려진 화살표 안으로 ‘먼’이란 글자가 선명합니다.
‘저쪽을 향해 가면 '먼' 곳이겠구나.’
차가 출발하자 ‘우금길’이란 글자가 이어집니다.
집에 와서 식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이런 이정표를 봤나, 어디인지 알겠어.”
처음 보는 광경에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파란 하늘에는 버스의 지붕 위로 달랑 이정표 하나뿐입니다.
이십여 년 전의 일입니다. 역시 차를 타고 갈 때입니다. 빨간 현수막이 보입니다.
‘불심’
석가탄일 가까워져 오니 연등과 함께 불교를 알리기 위해 설치한 것이려니 하고 지나쳤습니다. 집으로 되돌아올 때 다시 눈이 마주쳤습니다.
‘불조심.’
‘조’ 자가 순간적으로 나뭇가지에 가려져 일어난 착시 현상입니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 재미를 더합니다.
뭐 특별한 소재를 찾아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켰습니다. 오늘의 사설을 들여다봅니다. 신문사별로 차례차례 더듬어 갑니다. 머리가 아파집니다. 하나같이 좋지 않은 기사입니다. 최근에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 가스 폭발 사고, 기차 탈선 사고 등을 두고 온 국민들 사이에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들이 오갑니다. 정치가들은 자기 당의 입맛에 맞게 이야기를 만들어 가며 서로 설전을 벌입니다. 개인은 개인대로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비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빈정거림의 글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내가 이태원 사고가 일어난 다음 날 이를 소재로 글을 썼고 못다 한 말을 마음에 두고 있지만 더 이상 표현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혹시나 부적절한 표현에 시빗거리가 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만 품기로 했습니다. 결국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도 글감에 대해 머리를 쥐어짰지만, 소득 없이 잠들어야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낮에 남에게 한 말을 왜 기억하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그림책 모임에서 글감에 관해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맨 처음 나를 지목했습니다. 모임에서 제일 연장자라는 이유입니다. 어른 대접을 하는 모양인데 나에게는 생각할 여유가 부족합니다. 어쩔 수 없이 내 경험담을 말했습니다.
지난해입니다. 길을 가는데 이륜차의 안전모가 인도 가운데 떨어져 있습니다. 겉에 흠집이 있기는 해도 아직은 사용할 만합니다. 가로수의 가지 사이에 걸쳐 놓았습니다. 임자가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음 날입니다. 그 자리를 지키던 모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바닥을 보니 저만치 둑 기슭으로 던져 있습니다. 다시 주어 나무 기둥 사이에 끼웠습니다.
‘뭐야.’
어느 날 지나다 보니 작은 새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 후 모자는 새들의 놀이터가 되었는지 그들의 집이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나무가 아직도 모자를 지켜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글의 소재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오늘은 잠시 확인해 보아야겠습니다.
올해 백 번째로 써야 하는 글이기에 특별한 소재를 찾았지만, 이 세상에는 특별한 것이 많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비행기를 가까이 보고 싶어 손가락질을 한 일이 있습니다. 여객기, 제트기, 헬리콥터 등 비행기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며칠 동안 보이는 비행기마다 손가락으로 겨누었습니다. 누군가 손가락질을 하면 비행기가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가 손가락질로 정말 떨어졌다는 소식을 지금까지 듣지는 못했습니다. 며칠 전입니다. 비행기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답니다. 어린이가 아닌 이런 어른들이 있다니 신기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적군의 비행기도 아닌 국가의 지도자가 탄 비행기를 두고 한 말이랍니다. 생각해 보니 특별한 글감이기는 해도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개그의 소재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특별한 일만 있다면 혼란스럽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