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터진 공의 추억 20221117
반에 하나밖에 없는 공이 터졌습니다. 아이들이 등교 시간이나 점심시간 하교 시간을 불문하고 시간만 나면 몰려 운동장을 누빕니다. 아이들의 발길이 공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운동장에서 놀다가 때로는 힘센 발길질에 담장을 넘기도 했습니다. 튼튼한 가죽 공이었지만 피부는 긁히고 갈라지고, 상처투성이입니다. 닳고 닳아서 군데군데 실밥이 뜯기고 속살을 드러낼 찰나입니다.
드디어 터지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공이 터졌는데요.”
“잘 됐어.”
“예?”
“그동안 너희들이 건강했다는 증거지 뭐.”
학부모 한 분이 아이들을 위해 학기 초에 기증한 것입니다. 공이 귀하던 시절입니다. 시골 아이들에게는 크나큰 선물입니다. 추워질 무렵 공은 제명을 다했습니다. 이제 별 볼 일 없는 공은 아이들의 외면을 받은 채 교실 한구석에서 겨울을 지냈습니다.
봄이 되었습니다. 학급에서 대청소하던 날 버려야 할 물건들과 함께 주글주글해진 공도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한 아이가 아까운 듯 몇 번 매만지더니 말했습니다.
“선생님 버려야겠지요.”
“글쎄다. 놔둬 봐라.”
교실의 분위기를 밝게 해 주던 화분이 공교롭게도 그날 아이들의 장난으로 깨졌습니다. 야단치는 대신 터진 공을 가위로 잘랐습니다. 화분이 되었습니다. 복도의 신발장 위에 깨진 화분 대신 자리 잡았습니다.
“운동장에서 굴러야 할 공이 왜…….”
지나치는 아이마다, 지나치는 어른마다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씩 했습니다. 우리 반 명물이 되었습니다. 빨간 제라늄이 따스한 햇살에 싱싱함을 자랑합니다.
“선생님 집에서 터진 고무공 가져와도 될까요.”
“맘대로 하렴.”
다음 날 옆에는 조금 작은 동생의 화분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내가 학교를 떠날 때까지 공 화분은 자리를 잘 지켰습니다.
지난 토요일입니다. 예전에 갔던 달동네 생각나서 아내와 함께 가보았습니다. 예전의 허름하고 지저분한 골목과 담장은 알록달록 그림과 장식물들로 꾸며졌습니다. 칠을 다시 했는지 모두가 산뜻해 보입니다. 옆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막 장식을 끝냈나 봅니다. 물감 냄새가 날 듯 한 기분입니다. 바닥에는 여기저기 굵은 빗방울처럼 물감이 뿌려져 있습니다. 좁은 길목의 대문 양옆에는 무더기를 이룬 화분들이 가지각색의 꽃들을 보듬고 있습니다. 화분이 구구 각색입니다. 달아빠진 고무장화가 있습니다. 벽면에는 고무장갑도 있습니다. 공사장에서 쓰이는 낡은 안전모도 있습니다. 퇴색한 큰 플라스틱 화분도 있습니다. 제각기 화초를 담고 있습니다. 각양각색입니다. 맨드라미, 백일홍, 채송화, 나팔꽃, 국화……. 육칠십 년대의 시골풍이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모습은 그러해도 깔끔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실수로 과자 봉지를 바닥에 쏟은 것이 아까운 생각에 주워 먹어도 괜찮을 듯 바닥은 반질반질합니다. 마치 어제 소나기가 내려 골목의 먼지를 모두 쓸어간 듯합니다.
골목을 거니는 동안 인간미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획일적이고 규격화된 시대에 사는 우리는 같은 도시 공간에도, 여기에서만큼은 옛날의 시골 정취를 느끼게 됩니다. 나는 이런 이유로 가까운 도시의 낙후된 변두리를 찾는지 모릅니다.
학교 옆을 지나다가 주먹보다 조금 큰 공을 발견했습니다. 어려서 핑퐁 했던 크기의 알맞은 공입니다. 손에 힘을 주자 ‘푸’하고 바람이 빠지며 쪼그라듭니다. 누군가 쓸모가 없다고 버렸음에 틀림없습니다. 옛날 생각이 나서 가져와 다육식물을 옮겨 심었습니다.
“청승맞게 멀쩡한 화분을 두고 낡아빠진 공을 사용할 게 뭐예요.”
“변화를 주고 싶어서…….”
똑같은 화분 속에 다른 하나가 자리를 잡으니 색다른 느낌이 듭니다. 오리들 속에 검은 백조라도 된 느낌이랄까.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왕따 당하지 말고 잘 자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