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도서관에서 일상의 글을 모아 책을 발행하는 강의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내가 새벽 잠자리에서 깨어나자마자불현듯 책 만드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부터 마음에 두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평소에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내용이야 잘 된 것인지 아닌지 확신을 갖진 못했어도 책에 대한 꿈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는 책을 내겠다고 느긋하게 맘을 먹고 있습니다. 그것도 구십을 넘긴 다음으로 말입니다. 주위의 글 쓰는 동료들과 달리 이렇게 조급하지 않은 이유는 일본의 어느 작가 때문인지 모릅니다.
‘요즈음 세상에 나도 백 살은 넘기지 않겠어.’
일본 '산케이신문'에 연재되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낸 작가 ‘시바타 도요’입니다. 내용이 마음에 와닿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첫 작품집「약해지지 마」는 구순의 할머니가 일상의 소중함을 아름다운 삶의 방식에 대해 말합니다. 그의 따뜻한 추억뿐 아니라 연륜이 있기에 조용한 충고와 지혜도 꺼내놓았습니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면서도 동시에 ‘삶에 대한 열정’으로 일상을 꾸리는 삶의 방식을 우리에게 감동을 전합니다.
내가 아는 몇몇 사람은 글을 쓰기 시작해서 책을 한두 권 낸 경우도 있습니다. 글의 내용이 조금은 서툴다 생각은 했지만, 예의상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은 내가 자신보다 일찍 글쓰기를 시작했고 편수도 많으리라 생각했는지 종종 책 낼 것을 권유합니다.
“아직은 책을 낼 만한 실력이 되지 않아서요.”
이렇게 말하지만, 속내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들은 자비로 책을 냈지만 나는 내 글을 남들에게 인정받아 떳떳하게 작가로 자리하고 싶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책을 떠올렸지만 생뚱맞은 생각입니다. 생각이 꿈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잠이 덜 깼는지 모릅니다. 나의 머릿속에는 지금 강의실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강사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왜 책을 펴내려고 하세요.”
“마음이 급합니다. 여기에 모인 수강생보다 내가 먼저 이 세상을 뜰 수 있으니 서둘러야만 합니다.”
“그러시군요.”
그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주위의 젊은 수강생 얼굴에는 당연하다는 빛이 떠올랐습니다.
“내 말이 맞기는 하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라서…….”
사람들이 다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 하느님의 마음은 다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순리대로 한다면 이 세상에 먼저 태어난 사람이 먼저 떠나야 하는 것은 이치로 보아 맞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르듯 하느님의 생각과도 같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태어남에는 순서가 있는지는 몰라도 죽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저 사람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가 아는 분은 건강이 좋지 않아 몇 년 아니 몇 달 넘기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몇십 년을 살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쇠붙이라도 소화할 것 같은 건강한 젊은이는 며칠 전 사고로 세상을 달리했습니다. 내가 이와 비슷한 말을 전하자, 사람들의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졌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와 비슷한 일이 매일 일어납니다. 병도 병이지만 안전사고로 인해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나이와 관계없이 이승을 달리합니다. 죽음에 순서가 있다면 책을 내는 일도 순서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많은 젊은이가 책을 내고 있지만 나는 이 나이에도 글을 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집 식구들을 호구하는 일에서 벗어나고 보니 이제야 글 쓰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야무지게도 삼백 편의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다짐은 다짐으로 끝나나 했는데 늘 마음에 두었더니 공염불은 되지 않았습니다. 내용이야 좋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백 편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이 해가 아직 한 달이 더 남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글을 쓸 줄 몰라서 못 쓰고, 누구는 방법을 몰라서 쩔쩔매고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헤맨다고 합니다. 각자의 소질이 다르고 개성이 다르다 보니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른 시선으로 대하게 마련입니다. 하나의 통나무를 놓고 어느 사람은 집의 기둥으로 쓸 것을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그릇을 생각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장승을 말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각자 다릅니다. 견해 차입니다. 취미와 소질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통나무에 새 삶을 불어넣는 것은 각자의 생각이지만 나는 하느님의 부름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나는 청소년기에는 다른 사람들이 겪는 교육과정을 함께 거쳤지만, 학교를 졸업한 이후는 서로 다른 삶을 이어왔습니다. 타의에 의해 진로가 결정되어 잠시 기관차를 운전했고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마음에 묻어두었던 책에 관심을 두고 씨름하던 중 퇴직 후에는 도서관에 내 맘을 두었습니다. 지금은 도서관이 내 집이나 되는 양 이제는 책을 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의 부름이기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강의를 열심히 듣고 책 한 권 발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다 보면 글을 쌓이듯 내 책도 모이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