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족쇄가 풀린 날 20221115
내일이면 족쇄가 풀립니다. 어쩌다 생각지도 않은 코로나 전염병에 걸렸습니다. 느낌을 안 것은 십여 일 전이었지만 내가 아내에게 병을 옮긴 후에야 알았습니다. 아내가 감기로 몹시 불편해하기에 병원에 가보라고 했는데 코로나가 의심된다며 검진했는데 확진 판결을 받았습니다. 나도 검사를 해야 한다기에 병원을 곧 찾았습니다. 확진입니다. 의사가 일주일 동안 외부 출입을 삼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일주일 동안 집안에 갇혀있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사실은 몸과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병을 옮긴 주제에 내색할 수 없어 조금 아픈 척했지만, 아내 못지않게 힘들었습니다. 목이 찢어질 듯 따끔거리고 온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아내는 이렇게 아픈 것은 처음이라며 나를 두고두고 원망할 거라고 했습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에 잠깐 빗방울이 보일 거랍니다.
“여보, 족쇄가 풀리는 날이니 내일은 산책하고 대학교에 가서 식사나 합시다.”
힘이 없어 보이는 아내에게 외식을 핑계 삼아 몸을 움직이게 하고 싶었습니다. 가을 단풍 이야기도 슬며시 끼워 넣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단풍이 여간 고운 게 아닙니다. 아파트 단지는 물론 앞산도 색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엊그제는 너무 답답하기에 밤 한 시가 지나 아무도 없는 공원을 홀로 산책했습니다. 미세먼지로 뿌옇던 하늘이 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낮에 내린 비로 인해 하늘은 물론 단풍들도 생기를 얻었습니다.
하늘이 잠시 흐린 듯했지만,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반짝하더니만 바닥에 노랗게 깔립니다. 우산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빈손으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가의 가로수들이 아름답습니다. 비와 바람에 많은 단풍잎이 날려 엉성한 모습을 띠기는 했지만, 빛깔은 역시 곱습니다.
대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아내가 얼굴을 가립니다.
“빗방울이…….”
한두 방울이 점차 늘어납니다. 식당 십여 미터 앞에서는 빗소리가 들립니다. 종종걸음으로 식당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겉옷이 눅눅하게 젖었습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메뉴를 살폈습니다. 발견하지 못한 음식이 보입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지금 먹은 음식을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맛이나 질이 마음에 들지 않은 때문은 아닙니다. 잘 먹었습니다. 값에 비해 만족스럽습니다. 이렇게 비가 오고 을씨년스러운 날에는 따스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한 코너에 우리 고유 국밥 메뉴가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입맛만 다셨습니다. 별다른 계획이 없다면 일주일 후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식사하는 동안 빗방울이 줄기차게 쏟아졌습니다. 창문을 온통 빗물이 가렸습니다. 별일이 없으니, 산책하든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집을 나설 때 아내가 우산 이야기를 했지만, 일기예보만 믿고 들은 척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식당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이 되는 모양입니다.
“비를 맞고 가야 하겠지?”
“나만 따라와요.”
앞장서서 출입구의 이층 계단으로 올랐습니다. 강의실 앞에는 큰 홀이 있습니다. 시민을 상대로 인문학 강의가 있을 때 몇 번 와본 경험이 있습니다. 금방 행사가 끝났는지 화환이 널려있고 의자와 탁자의 집기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습니다. 공간은 텅 비었습니다. 창가로 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빗줄기로 보아 금방 그칠 것 갖지 않습니다.
휴대전화를 켰습니다. 송도의 날씨 예보, 저녁 여섯 시까지 비가 내립니다. 아침에 보았던 예보와는 또 다릅니다.
“저녁 여섯 시까지 비가 온다네.”
창밖을 보는 가운데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학생들은 우산이 어디서 났는지 하나씩 머리에 이고 느긋한 걸음입니다. 또 한 시간 가까이 지났습니다. 아내는 조바심이 나나 봅니다.
“신문지라도 한 장 있으면…….”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나 봅니다.
“머리에 쓰고 달렸는데.”
“그럼, 이만 갈까.”
비가 주춤거리자, 우리는 계단으로 내려섰습니다. 생각이 통해서일까, 출입문 상자에 생각하지 않은 신문지가 쌓여있습니다. 지난 신문입니다. 우리는 각자 신문지를 펼쳐 머리를 가렸습니다.
“넓게 펴야 옷이 젖지 않지.”
“머리만 젖지 않으면 돼요.”
그러고 보니 신문지의 고마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읽어서 좋고 머리에 써서 좋고, 바닥에 깔아서 좋고, 때로는 벤치에 누워 얼굴이나 배를 가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물건을 포장할 수도 있습니다. 비가 잦아지는 길을 따라 교문을 벗어나자 밖은 기다렸다는 듯 빗방울을 멀리 쫓아버렸습니다.
아침에 본 텔레비전 일기예보가 맞습니다. 아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열두 시가 되기 전부터 빗방울이 보였습니다. 아니 휴대폰에서 본 일기예보도 맞습니다. 오전 늦게 비가 오기 시작한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오후 늦게까지 내린다는 예보는 틀렸습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모두에게 맞추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우산을 챙겨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던 오늘은 기분 좋은 날입니다. 족쇄가 풀리고 몸도 회복되었습니다. 자축이 필요한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