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생각지 못했던 금족령 20221108
별 탈 없이 흘러가던 일과가 어긋났습니다. 한순간의 방심이 규칙적인 생활을 깨뜨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전까지만 해도 올해는 한 주간이 늘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보다도 더 많은 생각해야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자신의 과제물이 학교에서 내주던 숙제보다 더 많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지금처럼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일등을 놓치지 않았을 텐데.’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말도 동일합니다. 가끔 뭐 그리할 게 많으냐고 말합니다.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해 한동안 막혀있던 일상이 숨통을 트자 서서히 내 발걸음이 배움터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종합문화회관, 도서관, 평생학습관, 노인복지관,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되는 비대면 학습(zoom)으로 오일 간의 일정은 빈틈이 없습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머리를 식힐 겸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합니다. 재래시장을 찾기도 하고 공원을 들르기도 합니다. 서울의 잘 정돈된 옛 골목길을 걷기도 합니다. 집에서 아침저녁으로 함께 식사하지만, 밖에서의 오붓한 점심 한 끼는 또 다른 입맛입니다. 곳곳에 널려있는 길거리 음식을 먹는 재미도 있습니다. 겨울은 아니어도 호떡, 팥죽, 붕어빵, 국화빵, 어묵……. 내가 어릴 때 못해본 군것질을 해보는 것도 기분을 좋게 합니다.
오는 화요일에는 홍대 앞을 거닐기로 했습니다. 이날은 계획된 배움의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오면 거동이 불편하니 가고 싶은 곳을 미리미리 다녀오자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좋은 생각이라는 느낌에 수긍했습니다. 작년 가을과 올봄에 홍대입구역 주변을 거닐었는데 마치 학생이 된 기분을 느꼈습니다. 젊은이들이 거닐고 쇼핑하는 곳에는 우리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부끄럽다는 말에 뭐 죄지은 것이라도 있느냐며 앞장섰습니다. 사람 다니는 곳에 우리라고 다니지 말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잘 즐겨보자고 했습니다. 젊은이들의 옷, 액세서리, 먹을 것들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중에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먹을거리입니다. 이름이 낯선 음식을 그림을 보고 신청했습니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입니다. 외국을 여행하기 전 그 나라의 음식에 대한 걱정과 흡사했습니다. 그때도 잘 먹고 잘 소화했습니다. 하나의 새로운 맛에 또 다른 호기심이 생깁니다. 커피가 아닌 생소한 이름의 음료수도 카페에서 한 잔씩 마셨습니다. 재미가 별거입니까. 둘이 이삼만 원으로 하루를 즐겁게 지내면 검소함으로 그 이상의 즐거움을 산 셈입니다.
어쩌지요, 상상의 기쁨이 깨졌습니다. 아내의 감기가 심합니다. 어제부터 기침이 잦아지고 목이 아프다고 하더니만 아침을 먹고 나자, 증세가 나빠집니다. 드디어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푸석한 얼굴에 아픈 소리를 냅니다. 점심이 가까워져 올 무렵 집 앞의 병원에 전화했습니다. 감기가 심한 것 같은데 지금 가도 되겠느냐고 문의했습니다.
“빨리 오세요. 열두 시 사십 분부터 점심시간입니다.”
아내는 감기약을 처방받았습니다.
코로나가 아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은근히 내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걱정하는 아들에게 안심이 되라고 전화했습니다.
이를 어쩌지요. 두어 시간이 지났을 무렵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검진 결과를 확신할 수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확인해 보니 코로나가 확실하답니다. 내 마음에 찔립니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코로나에 걸리고 아내에게 옮긴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보, 당신도 와서 검사받으래요.”
결과는 예상대로입니다.
기온이 갑자기 곤두박질친 며칠 전 추위를 무시하고 옷을 얇게 입고 외출했는데 하루 종일 추운 생각만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콧물이 납니다. 내일이면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다음날부터 목이 아픕니다. 하루만 지나고 나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서너 해 동안 그렇게 별 탈 없이 지내왔습니다. 춥게 느껴지던 날 수영장을 다녀온 일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몇 년 만에 처음인데 마음이 성급했나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코로나에 전염될 만한 데는 그곳밖에 없습니다. 다닌 곳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실내에서는 늘 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의심이 될 만한 곳은 수영장뿐입니다.
의사한테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병원에 빨리 오셨어야죠, 아내도 전염됐으니 어쩌지요.”
다음 날이 되자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코로나 확진을 확인하고 주의사항과 협조 사항을 말해줍니다. 의사의 말처럼 일주일간 병원 이외는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내가 기분상 코로나 증상이 시작되던 날을 말하고 이미 일주일이 지났다고 했지만, 담당자는 검사일 기준이니 꼭 지키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동안 예방주사도 세 번씩이나 맞고 조심을 해왔는데 한순간의 방심이 나와 아내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이미 코로나에 걸려 고생한 사람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뉴스에서는 매일 코로나의 감염 상황을 전하며 조심할 것을 당부합니다. 이제는 아내와는 달리 내 몸이 가볍습니다. 계속 배움터를 찾아가도 될 것 같은데 일주일 동안 금족령이 내려졌습니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마음이 답답합니다. 누워있는 아내의 기침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아내가 빨리 코로나를 물리쳤으면 좋겠습니다. 따스한 물을 한 컵 마련하여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이 입안에서 맴돕니다.
“목 축여요.”
“죽이 먹고 싶어요.”
“무슨 죽으로 할까.”
재빨리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빨리 일주일이 지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추운 겨울이 닥치기 전에 아내와 계획했던 나들이를 해야 하고 일상의 배움터도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