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나의 라디오 20221119
책을 읽다 보니 어느 글쓴이의(공옥선)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륙십 년 대입니다. 삶이 가난했던 시절 라디오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돈벌이를 하러 서울로 올라갔을 때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족들을 위해 라디오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족들을 보러 자주 올 수 없으니 라디오를 들으며 자신을 보는 듯 대하라는 의미인지 모릅니다. 그 후 라디오는 이들의 어려운 삶에 위안을 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우리 집에 라디오가 여러 개 있습니다. 초기의 라디오를 빼고는 크기가 모두 작습니다. 온전히 라디오 기능만을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녹음기능이 있는 것도 있고 휴대폰에 삽입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지금은 휴대폰 하나만으로도 여러 기능이 있으니 라디오가 굳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는 않습니다.
내가 라디오를 접하게 된 것은 중학교 때입니다. 우리 식구는 서울에서 독립 거처를 정하지 못하고 일 년 정도 이모님 댁에서 신세를 졌습니다. 그 라디오는 크기가 큰 진공 라디오입니다. 가끔 이모부나 식구들이 라디오를 켰을 때 노래나 뉴스를 들었습니다. 내가 만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라디오를 들을 때 신기했습니다. 다이얼을 돌리면 서로 다른 방송이 나오며 목소리도 다릅니다. 내용도 다릅니다. 이웃 나라의 언어와 노래도 들렸습니다.
시골에서 살 때입니다. 어느 날 우리 동네 기와집주인이 유성기를 사 왔습니다. 손으로 태엽을 감고 레코드판을 올리자, 가수들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신기한 물건에 밤이면 동네사람들이 그 집의 사랑방 마루에 모이곤 했습니다. 나도 신기하다는 생각에 종종 어른들 틈에 끼어 잘 모르는 가수, 뜻을 잘 이해할 수 없는 노래를 듣곤 했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삼촌이 마을회에 갔다 오더니 말했습니다.
“라디오가 우리 마을에 들어오기로 했어.”
알고 보니 라디오가 아니라 앰프입니다. 집마다 앰프를 하나씩 설치하고 유선을 이용하여 한 곳에서 라디오 방송을 내보낸답니다. 대신 집마다 봄가을로 보리와 쌀을 몇 말 내기로 했습니다. 몇 년 동안 동네가 시끄러웠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듣고 싶으나 듣기 싫으나 한 곳에서 송출하는 지정된 라디오방송이 집안을 울렸습니다. 집에 사람이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듣고 싶어도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합니다. 스피커에 소리를 죽이는 기능이 없습니다. 그 시절 내 귀에 가장 많이 익은 노래의 가수는 황금심입니다. 만담이 유행했습니다. 인기를 끌었던 고춘자와 장소팔의 이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라디오 방송을 듣다 보니 밤이 문제입니다. 낮에 일정한 시간만 방송을 내어주다 보니 긴 겨울밤에도 듣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삼촌이 어느 날 친구한테서 광석 라디오를 얻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방송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호기심에 몰래 방송을 들어보았지만, 일본어 방송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 후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시골집에는 라디오가 할머니 곁에 자리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내가 중학교 이 학년이 끝나갈 무렵에 라디오를 구입했습니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머니가 할머니께 선물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는 늘 라디오를 곁에 끼고 사셨습니다. 우리 동네에 라디오가 제일 먼저 자리 잡은 곳은 역시 유성기가 있는 기와집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보니 문화면에서 늘 앞장을 섰습니다. 신문도 제일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라디오 방송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별이 빛나는 밤에 줄인 말인 별밤’과 ‘밤을 잊은 그대에게’입니다. 공부하면서 틈틈이 듣던 방송은 나에게 마음을 다독여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회자도 수없이 바뀌었습니다.
내가 라디오를 산 것은 시골에 직장을 갖게 되었을 때입니다. 집에서 직장이 멀다 보니 여러 해 동안 자취를 하거나 하숙했습니다. 밤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어느 일요일 당직을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뜬금없이 라디오를 내놓으면서 성능이 좋은 일본 제품이라며 살 것을 강요하다시피 했습니다. 다 팔리고 하나밖에 없으니 꼭 사야 한답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값을 낮추는 바람에 엉겁결에 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상술에 속은 것이 확실했습니다. 일본제품도 아니고 국산 중에도 값이 싼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도시로 전근할 때까지 절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라디오는 내게 세상의 소식을 전해 주고 음악을 감상하고 교양을 쌓는데 일가견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내 적적함을 달래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그 라디오가 사라진 지 오래이지만, 가끔 라디오 방송을 듣고 싶을 때면 몇 개의 라디오를 꺼내놓고 건전지를 갈아 끼우거나 충전하기도 하고 다이얼을 맞춰봅니다. 때로는 라디오마다 다른 주파수를 맞추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소리 높여 잡음으로 들리기도 하고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노랫소리가 뒤섞이기도 합니다.
“뭐 하는 거예요.”
“라디오 들려요.”
“라디오는 무슨 잡소리를 만드는구먼.”
듣고 싶은 라디오에 이어폰을 꽂고 나머지는 소리를 죽입니다. 지금은 제일 덩치가 큰 라디오입니다. 나머지는 서랍으로 직행입니다. 아내는 휴대전화로 들으면 간편하고 좋지 않으냐고 충고하지만, 지금은 라디오로 들어야 제맛이 날 것 같은 순간입니다. 잡음이 순간순간 있기는 해도 추억이 함께합니다.
‘방송은 라디오로 들어야 제맛이지.’
걸레로 라디오의 몸을 닦습니다. 따라서 소리도 맑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