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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112. 시선 20221118

by 지금은

‘법원 검찰청 한 번 가보지 못한 내가 대법원을 가봐야 할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흔들립니다.


배움터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끝내고 잠시 바둑실에 들렀습니다. 두 팀이 바둑을 두고 있습니다. 곁에서 잠시 구경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그만 집에 가야 하는데 이분하고 한 수 두시지요.”


“예, 곧 강의 시간이 있어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내 말을 잘 듣지 못했는지 함께 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나는 다시 똑같은 말을 해야 했습니다. 자리를 옮겨 옆에 사람의 바둑을 구경하고 있는데 그는 내 팔을 살며시 귀엣말합니다.


“할 말이 있어서요.”


“말씀하시지요.”


조용히 이야기해야 한다며 밖으로 나가자고 합니다. 복도로 나갔습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 교장을 잘 아느냐며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자고 합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나는 이 교장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몇 년 전에 바둑실에서 몸싸움이 있었지요. 그중 한 사람이……”


“예,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구석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복도에는 사람이 없는데도 감시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가려고 합니다. 나는 할 말이 있으면 여기서 이야기하라며 긴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는 싸움의 목격자입니다. 교장과 친한 사람인지는 모릅니다. 아니 반대편 사람과 인연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재판이 열렸을 때 법원에 참석하여 진술했다고 합니다. 그는 내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었으니, 참고인으로 부탁하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안개 속이었다고 합니다. 오늘에야 나를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후 나는 바둑실을 찾지 않았습니다. 싸운 그들의 모습이 보기 싫기도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낯선 사람과 오랜 시간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는 내 눈치를 봅니다. 나는 두 사람의 어느 편도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의 행태를 짧게 이야기했습니다.


“싸울 만해서 싸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그 둘의 행동을 볼 때 서로 간에 책임이 있습니다.”


전직 교장은 나이도 많지 않은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스스로 높게 여겼는지는 몰라도 바둑실을 찾는 사람들에게 어른 행세를 하려고 했습니다. 상대는 행동거지가 사람들의 눈에 곱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을 가리지 않으며 더구나 침을 함부로 뱉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와 바둑을 두다 보면 대부분 사람이 한 마디씩 했습니다.


“바닥에 침 뱉지 말아요.”


“뭐 어때서요, 청소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거 하라고 청소부 두는 거 아니에요.”


한 번 바둑을 둔 사람은 그와 함께하기를 꺼립니다. 그가 바둑을 두자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대부분 사람이 외면합니다. 교장은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며 그 사람의 청을 받아들였지만, 때마다 훈계했습니다. 서로의 감정이 격했는지 어느 날 몸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쌍방 폭행죄로 인해 두 사람 모두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데 상대의 행실이 고쳐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책에서 읽었는지 아니 누군가에게서 들은 말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되지 않지만 프랑스 파리 뒷골목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파리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새벽 일찍 아니면 밤늦게 산책하는 동안 자기 개가 골목길의 여기저기에 용변을 보도록 한답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뜹니다. 길을 걸을 때는 똥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애견가가 많아져 산책 겸 밖에서 용변을 보게 하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그들 중에 일부는 똥을 치울 마음이 없는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끔 눈에 뜨이는 것이 불쾌해서 당장이라도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시빗거리가 될까 봐 모른 척합니다. 어쩌면 실내에서 침을 뱉는 사람처럼 비슷한 말을 할지 모릅니다.


‘뭐, 어때서요. 청소미화원이 왜 필요한데요. 이런 거 하라고 나라에서 돈 주는 거 아니게요.’


새가슴인 나는 대법원까지 갈 일이야 없겠지만 잘못 말했다가는 큰 싸움으로 번질까 외면합니다.


‘반려견이라면서 기저귀나 채울 것이지, 남세스럽게.’


내가 프랑스의 파리를 둘러볼 때입니다. 생각이 나서 골목길을 다니는 동안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개똥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한낮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길은 깨끗합니다. 골목길에 개똥이 많다는 것은 옛말인지 아니면 새벽 일찍 미화원들이 수거를 했는지는 모릅니다. 그곳에 살아보지 않았으니,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이사 풍습 중에 이상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사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집안을 어질러 놓은 채 청소하지 않고 떠나버립니다. 나는 집안이 너무 더러워 시비를 한 일이 있습니다. 알아보니 이유가 있습니다. 깨끗이 치우면 부자가 못 된다며 이사 온 사람이 청소해야 한답니다. 이는 핑계일 뿐입니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주거지를 많이 옮긴 사람입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새 주인을 위해 바닥을 말끔히 쓸고 닦았습니다.


내 집을 인계받은 사람들, 가난해진 경우는 없습니다. 단지 미신입니다. 바쁘다는 핑계일 뿐입니다. 뒷모습이 고와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환경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떠난 자리는 늘 깨끗해야 합니다. 이렇듯 뒷모습이 좋지 못해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법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가 아닌 삼자 아니 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기억이 희미해서 정확한 진술이 불가능합니다.


‘법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내가 핑곗김에 대법원 구경을 해야 할까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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