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기억나지 않는 그 길 20221120
코로나 전염병에 걸렸습니다. 일주일 정도 아프며 지나갔습니다. 그저 감기려니 했는데, 몸의 상태가 늘 좋지 않아 컨디션이 그러려니 했습니다. 내가 아픔을 잊을 때가 되었을 때 아내가 같은 증상을 보였습니다. 상태가 심해 보입니다. 나는 아내에게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라고 재촉했습니다.
“코로나래요. 의사가 당신도 검진받으래요.”
요즈음 건강을 위해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죄인 같은 생각에 입맛이 없다는 아내를 데리고 외식을 자주 합니다. 외식을 핑계로 힘이 없다고 누워있는 그를 일으켜 함께 이곳저곳을 걷습니다.
“어때요, 걸을만하지.”
내 물음에 아내는 싫지 않은 눈치입니다.
오늘은 경의선 숲길을 걸었습니다. 경의선 숲길은 용산에서 가좌에 이르는 철길을 땅속에 지하화해 지상에 만든 공원입니다. 안내판을 간략하게 정리해 봅니다. ‘숲길 전체가 완공된 것은 2016년 5월. 폭은 지상 철도 용지의 넓이에 따라 구역마다 다르며 십여 미터의 좁은 곳이 있는가 하면 육십여 미터의 넓은 곳도 있다. 폐철로를 이용한 공원이어서 건널목 표지를 그대로 유지했다. 철로 레일에 귀를 대고 기차 오는 소리를 듣는 어린아이를 상상하여 조각을 설치한 곳, 철로를 걸을 수 있도록 레일과 침목, 철길을 바꿔주는 전환기도 있다. 버려진 폐철길을 들꽃과 도심의 실개천, 작은 공원, 책거리 등을 만들어 도시민들에게 휴식 및 운동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내가 오늘 구경을 하려던 곳은 이곳이 아니라 홍대 앞거리입니다. 작년에 가봤으니, 젊은이들이 북적대는 곳임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곳을 택한 이유는 수능을 끝낸 학생들이 많이 몰려오겠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시험에서 일시 해방된 그들의 발랄한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아내의 입맛도 고려했습니다. 걷다가 허름한 집에서 순댓국을 먹었는데 그 맛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합니다.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순간의 방심이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걷다 보니 새 길입니다. 이정표 옆에 있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경인선 숲길임을 알았습니다.
‘숲길, 전에 홍대입구역에서 가좌역까지 걸었는데 무슨 말이람.’
반대편 공덕역까지 연결된 길입니다. 걸어본 길이 아니기에 그냥 방향을 정했습니다. 무심코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걷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매일 다니던 길인데…….’
맞습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얻었을 때입니다.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사표를 내기 직전까지 나는 이 철길 위를 달렸습니다. 수색 기관차 사무소에서 용산역에 이르는 길에 학창 시절 등하교하듯 증기기관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나는 운전석에 앉은 승무원이었습니다. 어느새 오십여 년 전의 일입니다.
‘정말 이 길이 내가 다니던 곳인 게야?’
길을 걸으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철길 주위가 온통 논밭이었던 이곳이 상가와 단독주택과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다니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곳의 풍경을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한때 승무원이었다는 사실 외에는 그 무엇으로도 이 길을 달렸다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오십 년이 넘는 세월이고 보면 변하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 그 시절 이곳은 서울의 한 부분이면서도 내가 자란 시골과 별다름이 없었습니다. 시골 사람들처럼 농사가 기본이었습니다.
인공적으로 꾸며진 산책길은 아기자기한 모습입니다. 한 마디로 구간 구간마다 지루하지 않도록 변화를 주었습니다. 각각의 다른 단풍나무들이 색색의 잎을 자랑하고 건물들도 각기 다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실개천이 사라졌다 이어지기도 하고 도막 난 선로가 이곳이 철길이었음을 증명하려고 애씁니다.
‘당댕댕댕……’
철길 건널목이 들리지 않는 소리를 불러옵니다.
‘쉬익쉬익……’
큰 소리와 함께 시도 때도 없이 흰 수증기를 뿜어대는 검은 철마, 겁먹은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여름은 너무 더웠어.’
이글거리는 보일러 앞에 작업복은 금방 땀에 젖어들었습니다.
‘그 겨울 너무 추웠어.’
가뜩이나 추운 겨울 창문도 없는 운전석, 앞에서 달려드는 모진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습니다.
‘아니, 아니 되겠어.’
이런 무더위와 살을 에는 추위가 다시 나를 배움의 길로 가도록 일깨웠는지 모릅니다.
추억 속에 길은 분명한데 추억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