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주삿바늘 20221122
병원에 갔다가 두 번이나 바늘에 찔렸습니다. 다른 병원에서는 세 번이나 찔린 적도 있습니다. 몇 년 전 내가 입원했을 때입니다. 그녀는 새내기 간호사입니다.
“미안해요.”
나는 침묵했습니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간호사의 검지가 내 팔꿈치 안쪽에서 파르르 떨립니다. 한 번의 실수가 긴장을 불러온 모양입니다. 전번에도 두 번을 찔렸습니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다른 간호사를 불러왔습니다.
이번에는 다행입니다. 한 번으로 끝났으니 말입니다. 경륜의 결과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이 정확한지 모르겠으나 피부에 약물을 투여하는 것과는 달리 핏줄에서 피를 뽑는 것이 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며 병원 문을 나서지만, 마음은 밝지 못합니다. 어린 간호사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찝찝한 생각이 잠시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성장은 마음같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노력과 경험 그리고 몰입니다. 초보 간호사의 경우 이런 실수의 과정을 거치며 노련한 모습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간호사뿐이겠습니까. 새내기들의 출발은 알게 모르게 시행착오의 연속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아기는 일어서서 걷기까지 수많은 주저앉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가졌던 직업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니다. 나는 세 가지의 직업을 섭렵했습니다. 첫 번째는 기관차 승무원이었습니다. 기계의 조작을 익히기까지 두려움도 컸습니다. 많은 사람의 이동을 책임져야 하니 늘 긴장의 연속입니다. 승객이나 화물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것 못지않게 기관차가 선로에서 잘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와 확인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기관차 부위의 명칭이 외워지지 않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지도사의 눈치를 살펴야 했습니다.
“몇 번을 되풀이해서 짚어주었는데 아직도 헷갈리고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거야.”
매서운 표정에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습니다.
두 번째의 직업은 교사입니다. 내 나름대로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과 보다 나은 직업을 갖고 싶어 진로를 변경했습니다. 이 길이 전보다 나은 길인지 확신할 수 없어 한동안 고민했지만 지나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사 또한 기관차 승무원 못지않게 한동안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은 늘 낯설고 어색하게 마련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 익숙해지기까지는 여러 가지로 실수를 했습니다. 가르치고 되돌아보니 실수한 부분이 보입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잘못을 인정하며 수정을 해야 한 일도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면 산성 물질에서는 청색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적색으로 변하는데 적색이 청색으로 변한다고 말했습니다. 순간의 착각이 무심코 지나쳤다면 학생들의 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것이 추가되니 지식이나 기능을 익히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 연수가 필요했습니다. 초등교육은 만능의 손이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백과사전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다방면의 지식과 기능을 갈고닦아야 했습니다. 교육과정에 없는 것이라도 내 생각에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으로 생각하면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이들의 수업에 대한 호기심과 의욕을 일으키고 몰입의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쌓이다 보니 지금은 비록 현장에서 물러난 지 오래되었지만, 배움터의 어느 자리, 어느 분야에서도 처음부터 주눅 들지 않고 새로운 것에 쉽게 동화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세 번째는 도서관 사서입니다. 교육청 시책에 앞으로 학교 도서관을 활성화한다기에 교사들이 낯설어하는 사서 교육에 도전했습니다. 대학교에서 교육받고 자격증을 땄습니다. 이에 따라 퇴직하기까지 나는 도서관 업무도 병행했습니다. 지금은 학교마다 전담 사서가 있지만, 그때만 해도 교사의 사무 중 하나였기에 기피의 대상이었습니다. 힘이 들고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나는 상사의 간섭을 받지 않고 계획에 의해 마음 편하게 도서관 업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책의 확충은 물론 학생들의 독서 활동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학교의 도서 담당자들이 학교를 찾아와 지도와 조언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것이 원인이 되어 퇴직 후에는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하고 한 때는 시립도서관이나 구립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처음 개관하는 도서관은 인력이 크게 부족했습니다. 이때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도서 목록에 대해 협의하고 조언도 했습니다. 내가 필요한 책을 대출받기 위해 도서관을 찾으면 그때의 사람들을 자주 목격합니다.
“잘 지내시지요.”
다가와 반갑게 마주합니다. 그들은 아직도 젊은이입니다.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나에게는 복권을 하나 얻은 셈입니다. 나이가 들다 보니 점점 젊은이들과 어울릴 기회가 줄어듭니다.
직장에서 서로 간에 능력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간호사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어느 집단이나 연륜에 따라, 기능의 습득에 따라, 마음가짐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자랑 아닌 자랑도 했지만 나라고 모두를 잘할 수 있겠습니까. 자꾸만 익혀가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는 잘하고 못하는 차이는 재주가 아니라 몰입과 꾸준함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다음에는 주저하지 않고 단 한 번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합니다. 긴장되지 않은 밝은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