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소학에 신체발부(身體髮膚) 물훼물상(勿毁勿傷)이라고 했습니다. 풀이해 보면 몸과 머리털, 피부는 해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공자도 말했습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 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毁傷 孝之始也)라. 몸과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상처를 내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어느 날 아내가 뜬금없이 나에게 가발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아내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한때도 있었습니다. 내가 머리칼이 빠지기 시작한 것은 나이 삼십을 넘기면서부터입니다. 머리칼이 하얘지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일렀습니다. 십 대에 새치가 생기더니만 후반에는 흰 머리칼이 머리 삼분의 일을 차지했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젊은이가 내 팔꿈치를 끌어당기고 전철의 출입문 쪽으로 가서 기대섰습니다. 내 뒷모습을 보았던 모양입니다. 학생이지만 방학이라서 교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빈자리와 젊은이를 보는 순간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어느 날 형님 댁에 갔더니만 조카가 말했습니다.
“삼촌 머리카락 심지 않으실래요?”
고등학교에 다니던 조카는 내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나는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돈이 있어야 심지. 네가 준다면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돈을 벌면 아버지부터 해드려야 하는데.”
형님이 빙그레 미소를 짓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싫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나는 친탁을 했습니다. 외탁했더라면 머리카락이 하얗다든지, 머리카락을 심어야 한다든지 하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외할아버지와 할머니, 외삼촌은 검은 머리칼에 숱도 많습니다. 친탁하고 보니 몸이 왜소하고 병치레도 잦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나는 집안의 내력을 원망해 본 일은 없습니다. 남들은 외모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지만 내 외모에 주눅이 든 적은 없습니다. 외양보다는 실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머리염색을 한 일이 몇 번 있습니다.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눈이 빨개져서 고생했습니다. 병원을 찾았습니다. 염색했다고 말하지 않아서일까? 의사는 계절이나 음식에 따른 알레르기 현상이라며 처방을 내렸습니다. 나도 원인을 알 수 없으니 그 후에도 몇 차례 염색했습니다. 같은 증세가 연속 나타났습니다.
‘아! 염색 때문이었어.’
이유를 알고는 멈췄습니다. 그 후 결혼할 때 딱 한 번 염색했습니다. 이발소에 갈 때마다 종종 염색해야 좋겠다는 이발사의 권유에 부작용이 있다는 말로 물리쳤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아내의 머리가 이상합니다. 큰 조카의 결혼식장에 가는데 머리칼이 유난히 풍성합니다. 머뭇거리더니 부분 가발을 했다고 합니다.
“여보 당신도 가발을 써보면 어떨까.”
어느 날 화장대를 보니 가발이 놓여있습니다. 왠지 마음이 섬뜩해집니다.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귀신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습니다.
세상은 고르지 않나 봅니다. 옆집 학생은 곱슬머리라서 학년이 바뀔 때마다 걱정했습니다. 처음 등교하는 날이면 담임선생으로부터 훈계를 들어야 했습니다.
“학생이 머리를 파마하고 다니면 되겠어. 더구나 남학생이 말이야.”
원래 머리칼이 그렇다고 해도 믿지 않으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모가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두발의 자유화가 되면서 걱정을 덜었답니다.
나의 경우 점점 머리칼이 빠져 줄어들더니 이제는 옆머리만 남았습니다. 어느새 눈썹까지 하얗게 변했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남들보다 나이가 들어 보입니다. 낯모르는 곳에 가면 곧잘 어른 대접을 받습니다.
요즘은 성형미인이 많은가 봅니다. 주위에서 성형했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의과대학 성형외과가 인기 학과로 발돋움했습니다. 아는 사람이나 배우들의 변한 얼굴을 볼 때가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지고 싶어서 병원을 찾았겠지만 나에게 비치는 그들의 얼굴은 마냥 어색하기만 합니다. 성형하기 전이 더 보기 좋았는데 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얼굴이 기형이거나 피지 못할 사정으로 성형해야 할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부모가 준 얼굴을 굳이 고쳐야 할까? 의문이 듭니다. 개중에는 더 예뻐지고 싶어서 한 행동이 후회를 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나는 자연 남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이를 들어가면서 남과 견주어 볼 때도 내 얼굴이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과도 제 모습이 멋지다고 말한다지요. 주눅 들지 않고 사는 것이 최고가 아니겠습니까. 나 자신 미남은 아니어도 자연산임은 분명합니다. 스스로 잘났다는 암시 속에 점수를 듬뿍 주며 살아갑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자연스러운 남자임이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