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남는 것 20221130
‘마스크의 계절이 돌아왔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습니다. 잔뜩 긴장했습니다. 마스크를 벗을 생각이 없습니다.
어젯밤 뉴스가 끝날 무렵 일기예보 진행자가 소리를 높였습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입니다.
“기상 경보를 발령합니다.”
어제보다 십오 도나 낮을 거랍니다. 내일은 꼭 가야 할 곳이 있는데 은근히 걱정됩니다. 예보를 들은 아내는 먼저 아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내일 엄청 춥대요. 긴 외투 꺼내놔. 마스크도 하나 더…….”
나는 이야기를 듣고도 못 들은 척했습니다.
“당신은 왜 준비하지 않고 있어요.”
“뭘.”
“꼭 내가 꺼내줘야 하나.”
나는 지금 외투를 입지 않았습니다. 마스크와 외투, 목도리와 장갑으로 몸을 단단히 감싸라고 했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평소의 차림에 따스한 모직 점퍼를 걸쳤을 뿐입니다. 아니 마스크는 썼습니다. 바람이 거슬리기는 해도 부지런히 걷기에는 좋은 날씨입니다. 어느새 평소보다 걸음이 빨라집니다. 곤두박질한 기온 탓인가 봅니다. 횡단보도의 큰 건물 앞으로 들어서자 싸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나도 모르게 햇볕을 찾아 걸었습니다. 아파트의 서쪽 벽면을 타고 걷던 내가 오늘 아침에는 동쪽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늦은 등교 시간인가 봅니다. 학생 몇 명이 보입니다. 검정 마스크에 엉거주춤한 모양새입니다. 긴 코트(padding coat)를 걸쳤습니다. 내 옷차림과는 달리 그들은 앞자락을 여미지 않았습니다. 차림새가 흩어져 있습니다. 한 손은 호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든 손은 눈앞에 있습니다. 잔뜩 웅크린 모습에서 문득 핼러윈(halloween) 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마귀할멈의 모자 하나만 빌려 쓰면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부스스한 머리, 검정 마스크, 칙칙한 옷차림에 한 명은 슬리퍼를 신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추운 날이 분명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스크를 벗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검정 마스크를 썼습니다. 학생들 사이에는 검정 마스크가 유행인가 봅니다.
이들의 걸음걸이와는 달리 나는 씩씩하게 전철역으로 향합니다. 걸음 폭을 넓혀 전진합니다.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지 않았습니다. 습관대로 손을 번갈아 내젓습니다. 빨리 걸어도 땀이 나지 않아 좋습니다. 이십여 분을 걸었습니다. 입과 코의 언저리에 더운 콧김의 축축함이 느껴집니다. 전철역 가까이 가서야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훅하고 찬 기운이 얼굴을 감쌉니다. 손수건을 꺼내 코 주변을 자근자근 눌렀습니다. 소의 부리망을 씌우듯 다시 마스크를 썼습니다.
마스크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의 시간은 계속되었지만, 이제부터는 얼굴과 좀 더 친밀해야 할 시기입니다. 추워지는 날씨로 거추장스럽다거나 귀찮다는 생각을 점차 잊게 됩니다. 코로나로 시작된 외양의 변화가 어느덧 패션의 일부로 변했습니다. 초기 흰색만으로도 귀한 대접을 받던 마스크가 작은 변신을 거듭한 가운데 모양과 색깔이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다양함을 갖췄습니다.
누군가 크게 잃어도 남는 게 있다고 하더니만 코로나의 이면도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위생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예방의학과 치료에 관한 의료 산업의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사람들의 행동을 옭아맸습니다. 하지만 전염병이 확산하면서 나라 간의 이동이 단절되고 나라 안에서도 통제되었습니다. 산업이 도산하고 위축되었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조금만 지나면 끝날 거라고 했는데 벌써 몇 년 동안이나 세력이 수그러들 줄 모릅니다. 기세가 꺾이는 듯했는데 다시 세력을 키웁니다. 돌연변이의 출현입니다.
코로나는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사람 간의 접촉이 줄어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차림새도 변화가 있습니다. 옷차림에 신경을 덜 쓰는 경향입니다. 머리를 염색하지 않은 사람들, 화장하지 않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마스크는 내 일상도 변화시켰습니다. 텁수룩한 수염과 얼굴의 주름을 일부 가려줍니다. 모자까지 쓰면 내 얼굴은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조금은 치부를 가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사람도 무심코 지나치다 보면 알아보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코로나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검은 마스크는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사회 통념상 도둑이 아니면 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겨울에 흰 마스크를 썼다면 감기 환자쯤으로 여겼습니다. 지금은 너나없이 방호용입니다. 오늘같이 추운 날에는 방한용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크게 잃어도 남는 게 있다는 말을 다시 떠올립니다.
‘코로나’
마스크는 마음을 안정시킵니다. 연구에 의해 질이 개선되었습니다. 패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겨울철 방한용으로 구실을 톡톡히 합니다. 앞으로 김이 서리지 않고, 숨쉬기에도 더 수월한 마스크가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같이 추운 날에는 코로나가 아니어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보다는 마스크에서 자유롭게 벗을 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