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한 걸음 더 20221201
내가 한창 산행에 빠져있을 무렵입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학교 동료들과 설악산으로 야유회를 간 일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날씨가 쾌청했습니다. 다만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후 늦게 비가 올 예정입니다.
산행을 즐기는 나는 서둘러 울산바위로 향했습니다. 등산복을 제대로 챙겨 입고 배낭도 잘 꾸렸습니다. 목표는 정했지만, 각자의 체력에 맞게 올라갔다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나는 젊을 때라 산행에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동료 한 사람과 함께 출발했습니다. 그는 전문 산악인 못지않은 체력과 산행의 요령을 알고 있습니다. 시작은 함께했지만, 흔들바위에 이를 무렵부터 저만큼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울산바위 아래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조금 전부터 이슬처럼 내리던 빗줄기가 갑자기 굵어졌습니다.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비는 이미 몸에 걸친 상태입니다.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온다고 했으니 곧 수그러들 거라고 하는 마음으로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울산바위를 오르는 철 계단에 이르자 바닥은 이미 물을 머금고 있습니다. 이왕 왔으니, 정상을 밟아야겠다는 마음에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앞서가던 사람들은 어느새 계단에서 사라졌습니다. 중간쯤에서 뒤를 돌아보니 올라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끝까지 갈까, 아니면 그만둘까.’
비바람이 점점 세력을 키웁니다. 한발 한발 오르다 보니 이제는 삼십여 미터 남짓 남았습니다. 조심스레 발을 옮기는 순간 몸이 휘청했습니다. 발이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회오리바람이 내 몸을 휘둘렀기 때문입니다. 아찔한 순간입니다. 난간을 움켜잡고 잠시 마음을 안정시켰습니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보입니다.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올라가 그만둬.’
비바람은 계속 몰아칩니다. 십여 미터를 전진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아래 계단을 택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허공을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습니다.
다음에는 꼭 성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후로 나는 울산바위의 정상을 밟지 못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산행은 있었어도 그곳으로의 산행 일정이 자꾸만 뒤로 밀려났습니다. 울산바위 이야기만 나오면 그들과의 이야기와는 달리 실패담을 입에 올려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상황에서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는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흔들바위에 이르렀을 때는 거짓말같이 햇볕이 쨍했습니다. 한 발 더 전진했더라면 울산바위의 미련은 머리에서 지워졌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우리가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일을 하거나 무엇을 배울 때, 대개는 한고비가 있게 마련입니다. 수영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수영에서는 제일 어려운 것이 호흡입니다. 숨쉬기가 편해야 마음대로 팔다리를 저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연습이 필요합니다. 처음에 수영을 배울 때입니다. 수강생이 이십여 명이나 됐는데 완전히 익힌 사람은 나와 또 한 사람뿐입니다. 육칠십 대의 나이로 배워보려니 몸이 마음대로 말을 듣지 않아서인지 점차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수영장의 정식 레인에서 물질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끝 레인에서 걷기 운동을 합니다.
나와 한동네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나보다 일찍 수영에 입문했지만, 아직도 물속에서 허우적거립니다. 수영을 배우기를 몇 차례 시도했지만,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의 연속입니다. 숨쉬기가 어렵답니다. 대부분 사람의 실패는 문턱을 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결승선까지는 잘 견디며 왔는데 그만 테이프 앞에서 주저앉고 맙니다.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가 도전과 응전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가혹한 환경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발전할 수 없었음을 강조합니다. 기후가 온화하고 비옥한 양쯔강과는 달리 황허강 유역은 겨울에는 배가 다닐 수 없는 악조건입니다. 게다가 여름이면 매년 범람이 잦아 농사짓기에 불리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황하는 문명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처럼 다른 고대 문명의 발상지 또한 척박한 환경이었습니다.
나는 수영을 익히고 난 후 느낀 점이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딱 한 걸음만 더 나아가라.’
나는 무엇인가를 한참 배우다가 갑자기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삶을 되돌아볼 때 이게 고비구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나는 계속해야 하나 이 정도에서 포기를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집니다. 이럴 경우 나는 주문을 욉니다. 남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에디슨이 있습니다. 장인이나 명장 거저 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