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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127. 담요 한 장 20221202

by 지금은

“한파 경보 발령.”


어젯밤 뉴스 시간에 아나운서의 첫마디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기온이 급강하하니 조심하라는 당부입니다. 바깥나들이를 하는 중 바람이 매섭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바람의 냉기가 얼굴을 얼얼하게 합니다.


공원을 지날 때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넣었던 손이 얼굴로 다가갔습니다. 귀가 시리다는 느낌이 저절로 손에 전달되었나 봅니다. 이해 십일월은 예년에 비해 따스했습니다. 하늘은 달이 바뀜을 알았나 봅니다. 십이월 초하루가 되자마자 돌변했습니다.


“겨울을 알리는 거야.”


정말로 기온이 대폭 떨어졌습니다. 한겨울 기온이라면 뭐 그러려니 했을 터인데 온화하던 날씨가 갑자기 변덕을 부리니 추위를 심하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평소 겨울에도 주머니에 손을 잘 넣지 않던 내가 벌써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는 게 조금은 생소합니다.


어제오늘은 춥습니다. 점점 기온이 내려갑니다. 아침에 춥다고 했는데 점심때는 더 추운 생각이 듭니다. 햇볕이 등을 구슬려도 세찬 바람은 앞가슴을 시리게 합니다.



출근하고 비어있는 아들의 방에 온기가 없습니다. 특히 컴퓨터가 자리한 창가는 서늘합니다. 벽을 만졌습니다. 차가움이 묻어나옵니다.


“여보 안 되겠어요. 방 안의 온도를 높여야겠군, 그리고 작년에 사용했던 것…….”


아내는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무릎담요를 가지고 왔습니다. 커튼도 가지고 왔습니다. 창을 가리는 김에 커튼도 바꿔 달 생각입니다. 몇 년 사이에 무릎담요가 여러 잘 생겼습니다. 많다 보니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서너 장 나누어 주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냥 둘걸 그랬습니다. 지금 있는 것으로도 창을 가릴 수 있지만 크기가 다르고 색깔이 제각각이라 구색이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을 잘 지냈습니다. 아내는 궁상맞다고 말했지만, 담요 두 장을 이어 붙여 벽의 높낮이와 맞추었습니다. 커튼 뒤에 겹쳐서 달고 보니 지난해보다 보기가 낫습니다. 작년에는 커튼의 앞에 붙였더니 흉했습니다. 컴퓨터 책상에 앉았습니다. 다소 어둡기는 해도 포근함이 묻어나옵니다.


부천에 살 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결혼 후 이 년이 지난해였습니다. 없는 돈 있는 돈을 모아 집을 마련했습니다. 빠듯한 살림이고 보니 변변치 않은 집이었지만 부잣집 사람 못지않은 마음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가을을 잘 지냈는데 생각지 못한 겨울이 문제였습니다. 오래된 집이고 보니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만 방안의 물이 얼었습니다.


갓난아이의 건강이 염려됩니다. 젊은 우리는 어떻게 견뎌볼 수 있지만 꼬마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안쓰러운 생각이 듭니다. 어쩔 수 없이 방안에 연탄난로를 놓았습니다. 성해서 낀 창문을 담요로 가렸습니다. 어느 날 아내의 친구가 집을 방문했다가 기겁했습니다.


“방안에 무슨 연탄난로야, 중독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걱정하면서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거실은 한 데나 마찬가지라서 연탄난로를 또 하나 놓았습니다. 난로의 주전자는 늘 스팀 기관차처럼 뽀얀 김을 뿜었습니다. 하지만 꽃들이 실내를 붉게, 노랗게 수 놓았습니다. 성주산의 진달래, 전신전화국 언덕의 개나리 가지가 우리 집에 자리 잡았습니다. 꽃병에서, 작은 항아리에서 철 모르고 활짝 피어났습니다. 화분의 제라늄은 시집가는 새색시의 빨간 립스틱보다 더 붉게 빛났습니다.


다음 해 봄이 되자 미리 겨울 준비를 했습니다. 두꺼운 스티로폼을 사다가 벽과 천장에 이어 붙였습니다. 이에 따라 여름도 시원하게 지냈습니다. 그해 겨울은 바깥 날씨와는 달리 마음이 따스했습니다.


며칠 전 꽃과, 포인세티아를 사 왔습니다.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멍 때리며 화초를 바라봅니다. 빨강 꽃들이 줄지어 화분 위로 솟아오릅니다. 시클라멘, 제라늄, 동백……. 오늘 외식하기로 한 아내와의 약속은 내일로 미루었습니다. 호들갑 떠는 날씨가 내일은 누그러들 거라 합니다. 빨강에 마음이 꽂혔으니, 팥죽을 먹어야 할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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