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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128. 겨울의 길목에서 20221203

by 지금은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황금연못’의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중 문득 안도현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요즘 연탄재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연탄은 우리들의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수효는 미미합니다.


오늘은 출연자들 추억담이 겨울의 길목을 달굽니다. 그 옛날 대나무 스키를 즐기던 이야기, 눈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추운 날 부고를 전하는 어린 소녀의 애환, 부인의 해산날에 산 고개를 넘다가 멧돼지와 마주쳐 생사를 걱정하던 군인의 이야기가 줄을 이었습니다.


그중에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연탄재에 관한 사연입니다. 나도 남에게 밝히지 않은 연탄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결혼 후 처음으로 집을 마련했을 때입니다. 겨울 준비를 위해 연탄을 광에 들였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겨울철 준비로는 땔감, 쌀, 김장이 삼대 요소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준비로 겨울을 날 연탄을 들였습니다. 이제는 별일이 없는 한 무난히 한 철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 편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연탄 광을 통과하는 수도 파이프가 터지면서 연탄은 그만 모양을 잃었습니다. 연탄에 불을 붙여볼 사이도 없이 하룻밤 사이에 곤죽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생 때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한때 서울의 비탈진 동네에 살았습니다. 가팔라서 자전거를 타기에 위험한 곳입니다. 여름에는 집까지 오르기가 불편했지만 이와 반대로 눈이 쌓인 겨울에는 찻길까지 내려가기가 불편했습니다. 미끄러운 길에 도움을 주는 것은 타고 남은 연탄재입니다. 집 앞에 눈이 쌓이거나 얼음이 얼면 영락없이 연탄재를 깔았습니다. 연탄재와 종종걸음은 엉덩방아 찧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한 번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하지만 나는 종종 연탄재를 발로 차서 깨뜨렸습니다. 바짓가랑이와 다리 사이로 퍼지는 뽀얀 먼지가 마음에 거슬리는 때가 있었습니다. 이때만큼은 연탄집게로 부수기는 했어도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발을 사용했습니다.

출연자 부부의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연탄을 연료로 사용했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연애 못지않은 즐거움을 간직하고 싶었나 봅니다. 영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집 앞의 눈밭을 뛰고 뒹굴었습니다. 눈을 하늘을 향해 날리고 눈을 뭉쳐 상대의의 목덜미 속에 넣기도 했습니다. 부둥켜안고 눈밭을 뒹굴고, 어깨동무하고 함께 넘어져 눈 사진도 찍었습니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온몸에 땀이 촉촉해지는 즐거움을 느끼며 집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부엌으로 들어간 아내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연탄을 갈아야 하는데 집게가 없습니다. 부부는 밖으로 나와 연탄재를 깨뜨린 곳을 뒤졌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연탄불은 사그라지는데 걱정입니다.


“기다려요, 다수가 있으니…….”


남편이 방법을 말했습니다.


잠시 후 이웃집에서 큰 소리가 났습니다.


“뭐야, 연탄을 훔치러 온 거야.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더니만.”


연탄집게를 사용하고 돌려주기 위해 몰래 이웃집에 간 게 문제였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주인은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미아리 집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가끔 눈이 왔으면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연탄재를 치우기 싫어지는 이유입니다. 쓰레기차가 오면 모아놓은 연탄재를 재빨리 밖으로 옮겨야 합니다. 미적미적하다가는 차를 놓치기 일쑤입니다. 이럴 때는 눈 생각이 납니다.


‘연탄재를 발로 차면 저절로 해결되는데.’


요즘도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과 업소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숫자는 극소수입니다. 어느새 그 많던 연탄공장과 소·도매 업소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신문을 보니 석탄재가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유는 석탄재가 석회석을 만드는 곳에서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연탄재를 함부로 찰 수도 없고 흔히 볼 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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