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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129. 새알심 20221204

by 지금은

“옹심아! 뭐 하냐. 아기 봐야지.”


우리 집 마당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돌담 너머로 옹심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보름달이 집 앞의 감나무 위에 덩그러니 앉아 집안을 내려다봅니다. 더 계속되는 부름에 옹심이는 하던 놀이를 멈추고 사립 문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편을 먹고 깨금발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짝을 잃었습니다.


동짓날입니다. 집마다 아침부터 팥죽을 쑬 준비를 했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팥을 삶고 집안 식구들은 경단을 빚습니다. 어린 나도 경단을 만드는 일에 끼었습니다. 대여섯 개를 만들었을까? 이내 싫증이 납니다. 옹심이네를 가봐야겠습니다. 옹심이도 경단을 만들까 궁금합니다.


“감자옹심이 먹으러 갑시다.”


텔레비전을 보는 중 어제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밖을 내다보며 미적대던 아내가 휴대전화를 켰습니다. 날씨가 누그러진 모양입니다.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흐리기는 하지만 어제보다는 나은 것 같네.”


우리가 채비를 차렸을 때는 햇살이 쨍하고 창문을 넘었습니다.


올여름에 먹은 감자옹심이가 며칠 전부터 생각났습니다. 나는 자극적인 음식보다 무덤덤한 맛을 좋아합니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점심때가 되자 허기를 채워야겠다고 주변의 음식점을 두리번거리는데 낯선 간판이 눈에 뜨였습니다.


‘강원도 감자옹심이.’


강원도에 갔을 때 올챙이국수를 먹어보았지만, 감자옹심이는 처음입니다. 아내와 함께 낯선 음식에 끌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맑은 국물에 담긴 새알심입니다. 담백합니다. 별맛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표정은 밝습니다. 떡을 좋아하는 아내의 입맛에 딱 맞는 모양입니다. 식감이 좋다고 하면서 그릇을 비웠습니다. 보통 때와는 다릅니다. 이 정도의 양이면 삼분의 이 정도를 먹었을 때부터 배가 부르다고 할 터인데 말이 없습니다. 음식이 맘에 들었는지 친구와도 두어 차례 찾았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들깻가루가 첨가된 새알심을 먹었습니다. 값을 조금 더해야 하지만 왠지 영양가 풍부할 것만 같습니다. 숟갈을 들자, 국물과 새알심이 입에 딱 붙습니다.


“오늘로 그만…….”


처음에는 좋았는데 그릇을 거의 비웠을 때부터 그 맛을 점차 잃었습니다. 이어 뒤끝에 아리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에도 이런 느낌이 들었는데 오늘은 확연히 감지됩니다. 아내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또 온다면 메뉴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감자를 먹은 생각을 해보니 감자옹심이뿐만 아닙니다. 찐 감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감자 음식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감자떡을 좋아합니다. 첨가물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린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는 찹쌀 새알심을 좋아합니다. 감자옹심이의 아린 맛과는 달리 달고 고소하며 식감이 좋습니다.


동지가 가까워져 옵니다. 이웃집에 살던 옹심이는 지금도 새알심을 만들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옹심이가 새알심을 빗는 거야.’


옹심이의 얼굴은 새알심처럼 둥글지도 않았는데 부모는 왜 옹심이라고 불렀을까. 마음씨가 동그래서인지 아니면 그렇게 되라는 생각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예명인지 모르겠습니다. 학교 앞, 내 친구 성수의 또 다른 이름은 돌멩이입니다. 건강하고 오래 살라고 돌멩이라고 부른답니다. 내 어릴 적 별명은 메기입니다. 입이 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금은 입이 크지 않지만, 그때는 내 주먹이 내 입으로 들어갔습니다. 옹심이라는 이름에 무슨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데 그 애 엄마의 성깔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옹심이’라는 말과 함께 ‘새알심’ 또는 ‘새알’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어느 순간 경단이라는 말도 듣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미트볼’이라는 말도 듣습니다.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새알심의 방언이 옹심이입니다. 경단은 한자 말이고 미트볼은 고기를 다져 만든 새알심의 영어 단어입니다. 요즈음 경단 즉 새알심으로 된 음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우리 집 주먹밥입니다. 밥이 남으면 가끔 멸치 반찬이나 김 부스러기, 견과류를 섞어 탁구공 크기로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팥죽처럼 찹쌀 새알심을 넣은 죽 종류가 있습니다. 완자라고 불리는 고기 완자가 있습니다. 음식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왕눈이 눈깔사탕도 있습니다.


아내가 음식점을 나오며 뒤를 돌아봅니다. ‘강원도 감자옹심이’ 손가락이 간판 위의 검은 글씨를 따라갑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점심은 다소 늦었습니다.


동지가 가까워져 옵니다. 아무래도 팥죽을 먹어야겠습니다. 새알심도 먹어야 합니다. 팥죽에 새알을 넣어 끓여 먹는 이유는 옛날부터 팥의 붉은 기운이 귀신의 음기를 물리치고 또 겨울철 유행성 감기와 역병 등 질환으로부터 건강을 지키는데, 팥과 찹쌀이 좋다고 합니다. 맛도 건강도 챙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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