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토요일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가씨의 노래가 마음을 울렸습니다. 며칠 후 교정에서 얼굴을 마주쳤습니다. 알고 보니 같은 학교 같은 학년입니다. 가사의 내용과 음악이 쓸쓸했지만, 한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누구의 노래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동료의 목소리가 좋았습니다.
내가 큰 이모 댁에 처음 갔을 때는 중학생이었습니다. 이 집에는 이종형의 사촌 동생이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공업고등학교 전기과 학생입니다. 그는 라디오를 만들었다며 집안 식구들에게 자랑했습니다. 부피가 큰 라디오입니다. 직사각형의 판에는 엄지손가락 굵기의 진공관이 여러 개 고정되었습니다. 전깃줄을 콘센트에 꽂고 스위치를 켜자, 불이 들어왔습니다. 소리가 납니다. 노래도 나옵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의 재주에 신기해하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라디오 부속과 기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노래가 끝날 무렵입니다. 갑자기 소리가 멈췄습니다.
‘에이 진공관이 나갔네.’
어떻게 알았는지 한 곳을 가리킵니다. 다시 들으려면 진공관을 갈아야 한답니다. 라디오에 대해 모르는 나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수리하는 김에 나도 집에서도 들을 수 있게 하나 만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값이 내 상상 이상의 금액입니다. 사촌 형은 라디오를 책상에 올려놓으며 혼잣말했습니다.
‘트랜지스터라디오가 고장이 나지 않아 좋기는 한데 너무 비싸서…….’
생소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한동안 라디오에 빠진 일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입니다. 그 시절에는 라디오가 텔레비전의 구실을 했다고 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보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과 듣는 것에 치중하는 차이입니다. 나는 가끔 텔레비전보다 라디오 시대가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텔레비전에 비해 상상의 즐거움이 배가됩니다.
우리 집은 어떻게 해서 처음 라디오를 장만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얼핏 기억으로는 어머니가 시골의 할머니께 라디오를 사주시며 함께 마련한 게 아닌가 합니다. 방학 때 할머니를 뵈었는데 자랑 속에 어머니 말씀을 하신 게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
어느 날 스위치를 켰을 때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의 음악이 첫 번째로 등장했습니다. 귀뚜라미가 울어대는 늦은 가을밤입니다.
‘아 그거였어.’
가수의 노랫소리와 함께 학교 동료의 목소리가 겹칩니다. 노래에 심취되는 동안 귀뚜라미의 울음은 잠시 보름달에 묻혔습니다. 그 후에도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 가끔 함께 걷는 동안 그의 노래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라디오가 텔레비전이 첫선을 보일 때처럼 귀했던 때인가 봅니다. 라디오에서 사람 소리가 나자, 아이들은 궁금했습니다.
‘이 작은 상자에 사람이 들어있을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게 되자 부모님이 출타한 틈을 타 망치로 상자를 때렸습니다. 라디오는 부서지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리마저 사라졌습니다. 겁에 질린 아이들은 아버지를 보자 눈물로 잘못을 빌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축음기에도 비슷한 일화가 있습니다. 남편이 축음기에 미처 하던 일은 하지 않고 노래에 빠졌습니다. 아내는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여가수의 노랫소리가 귀에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매일 남모르는 여자에게 빠져있는 남편이 미웠습니다.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여가수와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축음기를 집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새로운 것에는 새로운 일화가 하나씩 생겨나나 봅니다.
라디오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잠들 무렵이면 한 여인이 살그머니 텔레비전 있는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에 몇 차례씩입니다. 그 시간이면 홀로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습니다. 낯선 행동에 남편은 방문에 귀를 대고 동정을 살폈습니다. 흐릿하게 남자의 말소리가 들립니다. 아내의 맑은 웃음소리도 들립니다. 참다못한 남편은 갑자기 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피곤해서 자는 줄 알았는데 내가 시끄럽게 했나 봐요."
남편이 불을 밝히자 아내가 일어나 앉았습니다. 얼굴이 일그러지자 아내가 재빨리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재미있는데 함께 봐요."
텔레비전에 보이는 남자는 풍채에 어울리지 않는 가냘픈 음성입니다. 이에 반해 등장인물의 가녀린 여인은 목소리는 굵고 탁합니다. 잠시 바라보던 남편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토해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남미의 안데스산맥을 풍경으로 ‘철새는 날아가고’의 음악이 흐릅니다. 갑자기 라디오 생각이 납니다. 책꽂이 맨 위 천정에 닿을 듯 자리 잡고 있는 라디오를 꺼냈습니다. 오십 년은 된 사연이 있는 라디오입니다. 일제라는 말에 속아 산 국산 제품입니다. 그때는 속상했지만 이제는 무덤덤합니다. 스위치를 켰습니다. 대답이 없습니다. 뒤뚜껑을 열었습니다. 건전지의 통이 비었습니다.
오늘은 스마트폰 대신 라디오의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의 시그널(신호)을 시작으로 눈 내리는 겨울밤을 즐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