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껏 만지지 않던 공을 광에서 꺼내 바닥에 차 보았습니다. 차는 거라기보다는 발끝으로 굴린다는 말이 맞습니다. 왼발 오른발로 이리저리 몇 번 굴려보다 포인세티아 화분 옆에 놓았습니다. 퇴근한 아들이 인사를 하며 물었습니다.
“아니 웬 공이 나왔어요.”
“월드컵이잖아.”
“에그, 배구공이구먼.”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예상보다 일찍 눈을 떴습니다. 시계를 보니 두시 삼십 분입니다. 일어나기로 예정한 시각은 네 시인데 한 시간 반이나 이릅니다. 다시 잠을 청했지만, 머리가 점점 맑아집니다. 별을 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별수가 없지 하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습니다.
거실은 어둡습니다. 불을 밝히고 잡지를 손에 들었습니다. 시간이 되자 내가 식구들을 깨우지 않았어도 한 사람씩 거실로 나왔습니다.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각오를 다졌음에 틀림없습니다. 모두 늠름하고 활기찹니다. 나도 선수들의 각오만큼이나 우리 선수들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며칠 사이 세 경기를 치렀습니다. 강팀이라 여기는 선수들과 대등하게 싸웠습니다. 시작은 좋지 않았지만, 끈질긴 집념으로 끝내는 십육 강에 안착했습니다.
오늘은 세계 최강이라고 자타가 자부하는 팀과 팔 강의 고지를 향해 질주해야 합니다. 꼭 이기기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우리 선수들의 투지를 생각할 때 불가능만은 아닙니다.
“마스크의 사나이, 손흥민.”
아내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수비를 잘한다는 선수가 누구.”
아들이 곁에 있다가 등번호를 알려줍니다. 사번 김민재, 황소 같은 선수는 황희찬, 아이 같은 친구는 이강인, 제 나이와는 차이가 크게 나면서도 친구라고 했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이제 네 나이의 친구는 없어, 막냇동생 아니면 조카뻘이라고 하는 게…….”
아내는 축구 경기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야구 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운동경기 전반에 관해 관심이 부족하다는 말이 맞습니다. 이런 아내가 월드컵 경기를 맞이해서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모르는 규칙이나 의문점을 말합니다. 관심이 가는 선수들의 동향도 묻습니다.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나는 이번 월드컵을 보며 황희찬 선수에 호감이 짙어졌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 하지 못하던 동작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가 뛰는 모습을 보노라면 야생마를 떠올립니다. 상대 선수들 사이를 거침없이 헤집고 돌진합니다.
팔 강의 길목에 있는 상대편 팀은 자신들의 자부심만큼이나 강했습니다. 어느덧 세 골을 먹었습니다. 늦게 퇴근한 아들은 피곤했는지 아니면 승리의 가망이 없다는 생각인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뛰고 있지만 어느새 한 골을 더 먹었습니다.
“주눅 들지 않고 잘하고 있는데 상대편이 워낙 세네.”
그 후로 우리는 선수들이 상대편 골문을 향해 돌진할 때마다 환호와 탄식을 반복했습니다.
잠시 후입니다. 음악 연주회장에서 좋아하는 곡이 끝났을 때처럼 힘차게 손뼉을 쳤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선수가 상대의 골문으로 슛했습니다. 어찌나 빠른지 키퍼는 손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내 손뼉 소리에 아들이 방에서 뛰쳐나왔습니다.
“누가 골을 넣었어요.”
“네 막내, 막냇동생.”
지기는 했어도 잘했습니다. 주눅 들지 않고 상대와 대등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어느새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세계무대에 당당히 나라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예전에는 아시아 무대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던 우리가 세계의 젊은이들과 어깨를 겨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의 발전과 성장은 우리 국민의 위상을 함께 드높입니다. 경제 산업을 비롯한 사회, 문화, 예술 등, 다른 나라의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축구가 팔 강과 사강을 넘어 우승을 기대하듯 우리의 국력도 한 계단 오르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