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그림책 이야기 20221208
그림책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올해 초부터 문득문득 머리에 떠올랐는데 마땅한 곳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도서관과 복지관에 문의를 해보았습니다. 인터넷을 접속하여 알아보았지만 내가 참석하기에는 불편합니다. 문제는 거리입니다. 차를 두 번 갈아타야 합니다. 나와 인문학 강의를 듣는 한 젊은 수강생은 강사가 맘에 든다고 왕복 네 시간이나 걸리는 곳에서 찾아왔지만, 나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시월 어느 날입니다.
‘시니어를 위한 그림책 쉼, 나에게 보내는 숨 터’
평생학습관 홈페이지에 접속했는데 그림책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반갑습니다. 강의 내용을 자세히 살필 겨를도 없이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선착순 모집이니 인기 있는 과목은 시간을 조금만 지체해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재작년 도서관에서 그림책 만들기 강좌가 있었는데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에코백 만들기도 있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내일 하지 뭐 하는 순간 모집 인원이 차버렸습니다.
보름 후에 첫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시간 반 가까이 걸리는 거리지만 기대를 안고 찾아갔습니다. 열두 회의 강의인데 강사분이 네 명이나 됩니다.
‘분야별 전문가가 모였나 보다.’
강좌의 진행 방향을 듣고 보니 그림책 만들기가 아니고 기존의 그림책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과정입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철 무임승차를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무엇을 배운다기보다는 그림책의 이야기를 주제로 지나온 삶을 서로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네 명의 강사는 봉사활동을 자청한 사람들입니다. 나름대로 배운 지식과 기술을 우리에게 나누어주고 싶어 마음을 합쳤다고 합니다.
나는 그림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참석했지만, 의도와 달라 포기를 할까 말까 한 주일을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완주했습니다.
‘숨 터, 쉼터’
이들이 말하는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은 한숨 돌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돌려 말하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의미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했습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의 지나온 과정은 늘 힘들고 바쁜 시기였습니다. 일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육이오를 겪으며 빈곤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경제 성장이라는 어려운 일을 이룩했습니다. 뒤를 돌아다볼 겨를 없이 앞으로 달려온 세대입니다.
네 명의 강사는 이점을 머릿속에 떠올렸나 봅니다. 수강 시간 중 한 시간은 시니어와 관련된 그림책을 감상했습니다. 유아기부터 젊은 시절을 거쳐 노년기에 이르는 과정이 차시별로 이어졌습니다. 끝부분은 여행입니다.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저세상으로 먼저 간 아내나 남편, 혹은 부모 형제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줄 마음속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나는 큰 트럭에 냉장고, 세탁기, 옷가지와 먹을 것을 가득 실었습니다. 늘 일에 쪼들리는 삶속에서 헐벗고 굶주려야 했던 어머니의 가련한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도 편지에 담아보았습니다. 수강생이 떠올린 말은 대부분 사랑입니다. 나는 이들과는 달리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썼습니다.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 하나가 생겼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나 잠에서 깨어났을 때 올리는 기도입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 이어서 가족들에게 건강과 안전을 당부합니다.
나머지 시간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 놀이나 만들기를 했습니다. 나는 첫 시간부터 인기를 얻었습니다. 제기차기했는데 의외로 어린 시절의 실력이 나왔습니다. 다섯 번은 차겠다고 했는데 서른 번을 넘겼습니다. 그것도 양발로 찼습니다. 누군가 ‘그만, 그만’하는 소리에 멈췄습니다. 함께한 사람들이 엄지 척했습니다. 간단한 글쓰기, 만들기, 그리기, 괄호 안에 말 넣기, 어린 시절 이야기하기 등 회상의 시간이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했습니다.다.
마지막 시간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매우 만족에 동그라미를 했습니다. 수강생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함께한 강사들의 표정에서 기쁨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눈이 반짝였습니다. 그들은 학습관에 스스로 봉사활동을 자청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강의 시간에 제공된 물품도 자비로 구입했습니다. 매주 정해진 시간을 내는 일도 어려운데 사비까지 들였다니 마음이 찡합니다.
“다음에도 우리들이 프로그램을 마련하면 참가하실 거지요.”
“물론입니다.”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그림책을 출간하셨다니 이왕이면 그림책 만들기 강좌를 열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