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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13. 2024

2022 어느 날

137. 이런 날에는 20221216

‘토끼몰이 가야 하는데.’


모처럼 눈다운 눈이 내립니다. 중부를 비롯하여 전라도 지방으로 눈이 많이 내린다는 예보처럼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집니다. 잠시 뉴스에 귀를 기울이자, 날씨 변화를 전합니다. 차나 사람이나 미끄럼 사고에 주의하라고 합니다. 기온이 급격히 하강하여 농작물은 물론 동파 사고에도 대비할 것을 휴대전화로 알립니다.


창밖을 보니 큰길에는 벌써 자동차들이 거북이걸음을 합니다. 주차장을 방불케 하듯 늘어서 있는 것을 보니 초등학교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토끼몰이입니다. 우리들은 가을이면 서너 차례, 겨울이면 한차례 산으로 갔습니다. 연례행사처럼 선생님과 전교생이 참여했습니다. 가을에는 겨울 준비를 위해 솔방울을 주웠습니다. 난로에 쓰일 불쏘시개입니다.


겨울에는 토끼몰이입니다. 눈이 많이 내려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습니다. 날씨가 포근한 날 동네 청년들과 선생님, 학생들이 산을 에워싸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산마루를 향해 전진합니다. 막대기로 바닥이나 나뭇등걸을 두드리며 각자 소리를 내지릅니다. 이에 놀란 산짐승들이 날아오르고 네발 달린 짐승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달아납니다. 우리들이 노리는 것은 토끼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꿩이나 고라니를 잡을 때도 있습니다. 이날은 동네잔치가 벌어집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음식을 마련하여 하룻저녁을 즐깁니다.


중학교 때입니다. 방학을 맞이하여 늦게 시골에 내려갔습니다. 동네 행사가 끝나 서운하다고 했더니 친구가 말했습니다.


“내일 우리 둘이 사냥 가지 뭐.”


나는 추울 것을 염려하여 옷을 든든히 입고 삼촌의 군화와 점퍼까지 몸에 걸쳤습니다. 친구의 옷차림이 추워 보입니다. 겉옷을 벗어 입으라고 했지만, 입술이 떨리면서도 사양했습니다. 지게 작대기를 하나씩 손에 들었습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쳐가려면 필요합니다. 토끼를 만났을 때 때려잡을 수 있는 무기도 됩니다.

산마루에 올랐을 무렵 드디어 토끼를 발견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의 발걸음은 빨라졌습니다. 무조건 잡아야 합니다. 달아나는 자와 쫓는 자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눈에 빠지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나뒹굴면서도 추격이 계속되었습니다. 토끼도 잡히지 않으려는 필사의 탈출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토끼몰이의 요령을 알고 있습니다. 천천히 정상으로 몰았다가 다시 계곡으로 몰아갑니다. 신체의 특성상 뒷발이 길어 오르막을 향해 달아나기는 잘하지만, 내리막에서는 재주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쫓고 쫓기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정상으로 계곡으로 이어지며 몇 개의 산을 넘었습니다. 우리가 지치고 토끼도 지쳤습니다. 땀으로 겉옷이 거추장스럽습니다. 단추를 풀어헤쳤습니다. 겉옷을 벗어 허리에 맸습니다.


한낮이 되어서야 겨우 토끼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힘이 빠진 토끼는 잡힐 듯 잡힐 듯했지만 숨고 피하기를 반복하면서 달아났지만 결국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만 가지.”


“한 마리 더 잡아야지 않겠어.”


나누기가 불편하다는 의미입니다. 네가 가져가라고 했지만 불공평하다고 했습니다. 좀 쉬고 한 마리를 더 잡기로 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쫓고 쫓기는 추격이 이어졌지만, 이 토끼 역시 숨었다 달아나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함께 지쳤습니다. 해가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앉습니다. 아직은 눈의 반사로 어둠이 주춤거리지만, 곧 어두워질 게 분명합니다. 젖은 옷에 서늘함을 느껴집니다.


“그만 가자.”


“조금만 더.”


우리는 마지막으로 바위 절벽을 향해 토끼를 몰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뛰어내리지는 못해도 토끼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잡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산등성이를 넘었습니다. 작대기를 휘두르자, 생각한 대로 토끼가 절벽을 향해 질주했습니다.


떨어졌습니다.


“토끼 잡았다.”


아래에서 사람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동네 형이 토끼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형의 개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토끼를 물었답니다.


“우리 토끼인데…….”


우리의 행색을 보고 말을 들은 형은 순순히 토끼를 넘겨주었습니다.


“아무리 큰 토끼도 잡으면 한 사발이야.”


형의 어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가죽을 벗기고 나면 몸집이 작습니다.


동네의 친구들과 함께 형의 집에 모였습니다. 밤이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순백의 어둠이 밤을 지킵니다.


차들이 엉기적댑니다. 붉은 신호등의 빛이 눈발에 희미합니다. 오늘의 도시의 풍경은 눈과 어둠이 빗어낸 흑백의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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