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겨울 풍경 20221217
간밤이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앞산이 새 하얀 바가지 엎어놓은 듯 솟아올랐습니다. 누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학습관에 볼일이 있어 서둘러 가는데 입구 가까이에 포장을 둘러친 낯선 트럭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배추 네 포기에 삼천 원, 무 세 개 이천 원’ 바닥에 쌓인 무, 배추 앞에 푯말이 서 있습니다. 김장 시기가 지나서일까. 내가 생필품값에 관해 관심은 적은 편이지만 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이 가까우면 무와 배추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중년의 여인이 다가가자, 차에 기대 있던 주인이 말했습니다.
“믿고 사세요. 직접 시골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통통하네.”
물건을 매만지자 지나치던 몇 사람이 멈춰 섰습니다. 여자들입니다.
며칠 전 친구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 한 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뭐 하는 거야, 시간이 지났잖아.”
총무의 말에 휴대전화에서 대답이 들립니다.
“배추와 무를 뽑는 중이여. 이십 분 후면 도착을 할 거야.”
도시에서 텃밭을 하는 친구입니다. 친지들에게 무와 배추를 나눠주는 중이라고 합니다.
식사하는 중에 친구가 물었습니다.
“배추 주고 싶은데 가져갈 거야.”
잠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값도 싸졌습니다. 고맙기는 한데 집이 멀어 가져가는 게 문제입니다. 이미 김장했다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갑자기 김장 보너스가 생각납니다. 대우가 좋은 기업에서는 김장철이면 보너스를 주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공무원들에게는 설날 무렵이면 떡값 보너스라는 게 있었습니다.
“공무원들에게도 김장 보너스를 주면 좋으련만.”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던 시절이니 아내의 입에서 무심코 튀어나온 말인가 봅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1970년대에는 김장철이 되면 리어카가 연탄과 무·배추를 싣고 시장은 물론 골목을 누볐습니다.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배추와 연탄을 얼마나 들여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겨울철이면 먹을 게 김장 말고는 흔하지 않은 시기이니 배추 200 포기는 보통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식구가 적은 편이지만 150 포기를 구입했습니다. 김치찌개는 기본이고 넣는 재료에 맞춰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 시절 광에 묻어둔 동치미도 생각납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찐 고구마와 함께 먹던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른 봄이 되면 입이 괴로웠던 생각도 납니다. 날마다 밥상 위에 오르는 신김치와 짜게 절인 무입니다. 하지만 식량마저 떨어지고 이마저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봄을 나는 일이 무한의 괴로움이었습니다.
연탄도 100장, 200장 들이면 부자 못지않았습니다. 연탄 광은 봄이 되면 탄이 쌓였던 흔적이 드러납니다. 내 키보다 훨씬 높게 검은 자국이 묻은 벽은 그 집 가장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우리 집은 20·30장 들여놓을 때도 있지만 사정이 여의찮을 때는 새끼줄로 두어 장씩 연탄 가게에서 사 나르곤 했습니다. 배달에 웃돈이 붙기도 했습니다. 연탄을 실은 리어카가 들어가지 못하는 산동네입니다.
눈이 오거나 길이 얼 경우 연탄재를 깨부수어 미끄럼을 막는 게 그 시대의 풍경이기도 했습니다. 옆집 아이는 연탄재를 가지고 놀다가 집게를 잃어버려 부모에게 혼났습니다. 가난이 불러오는 추위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는 2학기 종업식 무렵까지 난로에 나무나 조개탄을 땠습니다. 난로 위에는 식은 도시락이 쌓였습니다. 점심 당번은 수시로 도시락의 위치를 바꿔야 했습니다.
‘이를 어쩌지요.’
실수로 도시락을 엎었습니다. 친구들의 원성이 이어졌습니다. 잠시 후 담임선생님이 호통하셨습니다. 입과 손가락이 한 곳으로 향했습니다.
“이 녀석들,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서로 실수를 나누는 거야.”
도시락 뚜껑에 밥숟가락이 줄을 섰습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 합니다.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온이 곤두박질쳤습니다. 특별히 바깥나들이를 할 일이 없으니 한동안 집에 갇혀 있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