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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13. 2024

2022 어느 날

139. 안되면 조상의 탓 20221222

육촌 동생으로부터 부음을 들었습니다.


“당숙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열락이 왔어.”


뜬금없는 말입니다. 잘 계시는 작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다니, 긴가민가해서 되물었습니다. 다시 작은 아버지께 전화했습니다. 수화기에서 들리는 음성이 돌아가셨음을 직감하게 했습니다.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동안 잘 견뎠습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동안 의사 아들을 두어서 수명을 연장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들이 알게 모르게 건강을 챙겨주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곧 장례식장으로 출발했습니다. 늘 그러했던 것처럼 낯섦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다정한 위로의 말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몸짓 인사로 대신했습니다. 가까워야 할 친척 사이가 어색하기만 합니다. 만남이 뜸하다 보니 사촌과 서먹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여동생과 매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결혼식을 치른 날 대면을 하고 지금까지 만남이 없었습니다. 동생은 내 얼굴을 기억한다고 하며 어려서 자신들 괴롭힌 일들을 일깨웁니다.


“어렸을 때 괴롭힌 것 사과하셔야 해요.”


나는 여동생을 귀찮게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동생의 오빠를 괴롭힌 것은 머리에 남아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앞두고의 일입니다. 입학 규정이 지방자치단체마다 달랐나 봅니다. 삼촌이 사는 곳은 정령이 되어야 입학할 수 있는데 서울은 1년 먼저 취학이 가능하다며 사촌 동생을 우리 집에 맡기고 싶어 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와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형을 공부시키기 위해 서울에 삶의 터전을 마련 중이었습니다. 그때 할머니를 비롯하여 삼촌 내외분들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어머니의 품만은 못했습니다. 어리광을 부린다든가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늘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부모 밑에서 자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식구들이 아무리 잘 건사해 준다 해도 모르는 섭섭함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삼촌이나 숙모를 설득하기보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를 좀 괴롭히는 일입니다. 그 일로 동생은 나에 대한 응어리가 남아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때를 보아 나의 진실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서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얼굴을 보면 인사를 나누는 정도입니다.


내가 다음 날 볼일이 있어 인사를 했습니다.


“내일 오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오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밤늦게 빈소를 나서려는 순간입니다. 삼촌이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습니다.


“산소 이장 문제는 어떻게 할 거야. 자리가 좋지 않아 집안에 우환이 생기는 것 같은데.”


지난 이야기입니다. 삼촌이 추모 공원에 자리를 마련했다며 선산을 옮기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형님이나 내 생각은 이장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사촌 형제들의 생각도 같습니다. 더구나 삼촌과 그 아들의 의견도 맞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없던 일로 했습니다.


어느 날 삼촌이 전화했습니다. 아들이 마련한 자리 옆에 자신의 돈으로 장지를 마련할 테니 선산을 옮기는 게 어떠냐는 취지입니다. 형님과 사촌 형제들과 상의를 해보고 소식을 전해달라고 했지만 이미 떠난 마음이고 보니 더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자식과의 합의점도 없이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예’하는 대답만 하고 미루었습니다. 미룬 것이 아니라 결론을 내렸습니다.


삼촌은 손이라고는 손녀 하나입니다. 손자가 없습니다. 사후를 걱정합니다. 아들이 있으니 살아있는 동안에는 제사를 지내고 묘소도 돌보아주겠지만 그 후가 문제입니다. 손녀에게 짐을 지울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이 마련한 곳에 우리 선산을 옮겨가면 누군가는 함께 돌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뜻을 나에게 내비쳤습니다.


선산을 옮기는 문제는 고모의 부추김도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모실 광정을 들여다보니 물기가 비쳤답니다. 나와 주변 사람들은 가까이에서도 보지 못했습니다. 할머니가 꿈에 자주 나타나 보금자리가 불편하다고 하신답니다. 고모와 할머니는 가까워서일까, 할머니는 나의 꿈속에서 불편함을 표현한 일이 없습니다.


되돌아보니 뜻하지 않은 사고로 동생과 사촌 동생을 잃었고 어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형님은 갑자기 쓰러져 여러 해 동안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얼마나 있어야 할지 기약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꼭 선산과 연관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생각이 다르니 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선산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각자의 삶과 죽음의 과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숙모를 추모 공원의 납골당에 모셨습니다. 삼촌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자식들의 설득에 의해 예정되었던 장지를 취소하고 서울의 근교에 자리했습니다. 예정된 장소가 멀어서 자주 찾아갈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보고 싶거나 생각날 때 자주 갈 수 있어야 좋지 않겠어요?”


삼촌은 추모 공원을 둘러보고 만족해하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생각지 않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동창 모임에 갔더니 나이가 같은 육촌 동생이 말했습니다. 아저씨가 뜬금없는 말씀을 하셨답니다.


“어디 산소를 쓸 만한 작은 땅이 없을까?”


추모 공원의 납골당으로 가기보다는 땅에 묻히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나 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조상들의 집터가 좋지 않다고 자손들에게 해를 입히는지는 더구나 모릅니다. 물론 살아있는 사람들이 안락한 집을 선호하는 것처럼 조상이라고 해서 다를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글쎄요. 경험해 보지 못한 죽은 사회에 대해서는 무뢰한일 수밖에 없습니다.


산소에 대한 생각을 접었나 했는데 아직도 미련이 있나 봅니다. 나는 삼촌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후의 세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도 좋은 죽음이 있고 나쁜 죽음이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생각합니다. 죽음 이후에 관해서는 조용한 이별을 원합니다. 삶과 죽음이 흔적을 지우고 싶습니다. 가족을 비롯한 나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내 흔적을 지움으로 인해 조상의 탓을 하기 싫습니다. 언젠가부터 마음속에 깃든 내 마음을 표현합니다. 조상에 관해 왈가왈부할 마음은 없습니다. 꼭 이야기해야만 한다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잘 되면 주변 사람들과 조상의 탓, 안 되면 내 탓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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