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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33. 나에게 꼭 맞는 의자는 없다 20210411

by 지금은

며칠 전부터 의자를 고르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뒤지고 책자를 펼치고, 가게를 찾았습니다.


오늘은 마음먹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매장을 둘러보았습니다. 다리가 아프도록 돌고 돌았지만, 꼭 맞는 의자는 없습니다. 모양새가 마음에 들면 편안함이 부족합니다. 하나가 괜찮다 싶으면 나머지가 눈에 거슬립니다.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모양이 거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요.”


“등받이가, 쿠션이…….”


‘의자가 어때서, 소파가 왜…….’


한동안 식구들이 투정을 부리면 괜한 말을 한다고 모르는 척 넘겨버렸습니다. 이런 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식구들보다 내가 먼저 타박합니다.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해야지. 안 그래?”


“별일이네요.”


그렇습니다. 무심하던 내가 별일은 별일입니다.


마음이 바뀐 이유가 있습니다. 이사한 지 십여 년이 되다 보니 실내의 벽과 천장의 도배가 구질구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 며칠 전에 마음을 먹고 새로 도배를 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만, 실내가 산뜻해 소파가 눈에 거슬립니다. 이십여 년을 사용하다 보니 많이 낡았습니다. 소파를 장만할 때는 평생 쓸 거라고 마음먹고 거금을 들였는데 내 수명을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거울을 보면 나도 늙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보다 어린 나이에 더 나이가 들어 보입니다. 늘 애지중지 보살폈지만, 색이 바래었고 피부도 많이 벗겨졌습니다. 군데군데 흠집도 생겼습니다. 등받이 천과 방석으로 외양을 가리기는 했어도 가끔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양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괜히 주눅이 드는 느낌입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늙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나무나 쇠라면 칠을 다시 해서 옷을 입힐 수 있지만 내 능력으로는 가죽이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에이,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생각을 달리했을 텐데.’


생각은 생각으로 끝내야 하겠지요. 매장에서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공동 의견으로 하나를 마음에 두기는 했지만, 시간을 두고 더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물건 고르기도 쉽지 않은데 사람 고르는 것이야 더 힘들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니 새삼스러운 것도 없지만 겪어보지 않은 것처럼 잠시 머릿속에 자리 잡습니다.


내가 배우자를 고를 때입니다. 아내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몇 년을 두고 많은 사람을 만나봤습니다. 그들 중에 어느 사람들과는 횟수를 거듭하여 만나며 서로의 의중을 떠보았습니다. 나에게 잘 맞는 의자인지 불편한 의자인지 알아보는 것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해집니다. 흡족한 것 같기도 하고 부족한 것 같기도 합니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구나 이왕이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보면 상대편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고민 끝에 최고는 아니어도 차선책이라고 여기기로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아들이 혼기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소파 이상으로 신경이 쓰이게 합니다. 가끔 말합니다.


“백 퍼센트,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어디 흔하니?”


소파가 낡아서일까요. 흠이 더 커 보입니다. 요즈음은 가끔 허리가 아픕니다. 등받이가 앉은 무릎보다 길어서인지 예전같이 편안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내 몸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나 봅니다. 쿠션을 등에 기대지만 불편함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처음과는 달리 아내와 정이 들면서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점점 익숙해지는 마음입니다. 눈빛이나 행동만 보아도 서로가 생각을 맞추어 갈 수 있는데 말입니다.


“물건이나 짐승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꿀 수나 있지…….”


어른들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이제는 아내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야 할 때가 됐나 봅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처럼 서로의 마음이 맞을 때도 있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 맞섬도 있었지만, 서서히 한 지점으로 시선을 모았습니다. 지금은요. 열두 시의 정 방향에서 행동이 조금쯤 어긋남이 있을 때도 있기는 하지만 마음만은 늘 정 방향입니다.


내가 목수라도 되어야 할까요. 의자를 만드는 장인이라도 되어야 할까요. 마음만큼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년 후면 나와 집을 방문하는 손님에게 안락한 작품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 꼭 맞는 의자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마음만으로 간직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차선책으로 발품을 팔기로 했습니다. 그 남은 시간은 내가 이미 마음먹고 실천하는 일들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볼 일입니다. 누가 압니까? 나를 꼭 헤아려 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만큼이나 마음에 드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발이 효자라는데, 눈도 효자라면 더 좋겠습니다. 모양과 색깔에 치우치기보다는 기능에 마음을 기울여 보기로 했습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기는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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